감나무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무를 심기에 적절한 시기이다.

나무가 따뜻한 봄기운에 잠 깨기 전, 그러니까 아직 겨울잠을 자고있는 지금이 나무를 심기

에 좋은 철이다.

그렇다고 아무 나무나 산에 가져다 심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의도는 아무리 좋을지라도 그것은 엄연한 생태계에 대한 인위적인 간섭이기 때문이다. 산에 나무를 심기 위해서는 산이 가진 토양의 성질과 현재 살고있는 나무들의 종류, 햇볕의 있고 없음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고루 살펴야만하고 그런 다음에 심을 나무의 종류를 결정해야한다. 그런 이유에서 홍농의 월곡에서 계마리까지 약 3.1km에 달하는 해안도로에 심어진 개나리가 잘 살지 걱정스러운 봄이다. 여러 가지 문헌들을 찾아보았지만 아직 학자들 사이에서도 개나리가 과연 염해(바람에 날리는 바닷물의 피해)에 강한 종인지 그렇지 않은 종인지에 대한 학술적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일반적으로는 염해에 강한 종이라고 하는데, 만조시 바다와의 거리가 1m도 되지 않는 모래땅에 심어진 개나리가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문헌도 없고, 일본에서 출판된 '최첨단의 녹화기술'이라는 책을 살펴보면 가급적 해안에서 멀리 심어야할 나무의 목록에 개나리를 기재해 두었다. 2년 쯤 지나면 나의 걱정이 부질없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판가름이 나겠지만, 말 못하고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라 하더라도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 만큼 나무심기에 있어서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올 봄, 마당에 감나무 묘목 한 그루 쯤 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가 미처 모르고 사는 감나무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감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분포지는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에서도 일부 지역에 제한되어 있으니, 남북이 단절된 이후로 북녘에 사는 우리민족들은 감맛을 어떻게 기억이나 하고 사시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감나무에 대한 기록으로는, 12세기 초 고려 인종 때는 고욤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13세기 중

반 고려 원종 때 "농상집요"에는 감나무 재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만, 얼마 전 서울 근교 일산 신도시 토탄층에서도 감나무 화석이 발견됨으로써 적어도 3∼4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우리 인간과 지내온 시간이 오래된 감나무는 조상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여러 가

지 문헌에서 예찬이 쏟아지는데, 중국 문헌인 단성식의 '유양잡조'라는 옛 책을 보면 감나무

의 '칠절(七絶)'이라 하여 훌륭한 점 일곱 가지를 꼽고 있다. 그것은 첫째, 수명이 길어서 수(壽). 둘째, 나뭇잎이 무성하여 그늘이 좋아서 다음(多陰). 셋째, 새가 집을 짓지 않아서 무조소(無鳥巢). 넷째,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무충양(無盤襄). 다섯째, 단풍이 아름답다는 상엽만완(桑葉萬琓). 여섯째, 열매가 달고 맛나다. 일곱째, 낙엽은 거름이 된다는 낙엽비대(落葉肥大) 등이다. 이것을 속전시유칠절(俗傳枾有七絶)이라 한다.

사실 감나무가 다른 나무에 비해 특별히 오래 사는 것은 아니고, 새가 전혀 집을 짓지 않는 것도, 벌레가 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감나무에 대한 애정이 얼마만큼 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런가하면 감나무의 '오상(五常)'이라는 것도 있으니 감나무의 잎에 능히 글씨를 쓸 수 있으니 문(文)이 있고, 나무가 단단해서 화살촉으로도 쓰니 무(武)를 갖추었으며, 감의 겉과 속이 늘 같은 색으로 붉어지니 표리부동하지 않는 충(忠)이 있고, 치아가 없는 노인도 드실 수 있는 과일이므로 효(孝)가 있으며, 열매가 늦은 가을까지 매달려있으므로 절(節)을 지녔다해서 문·무·충·효·절을 고루 갖춘 나무라 하였다.

그밖에도 감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이니 흑(黑), 잎이 푸르르니 청(靑), 꽃은 노란색이니 황(黃), 열매가 붉어서 적(赤), 곶감에 생기는 하얀 가루는 백(白)이라 하여 이것을 감나무의 '오색(五色)'이라고도 하였다. 특히 곶감에 생기는 하얀 가루를 한자로는 '시상(枾霜)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때에는 이것을 따로 모아 감미료로 쓰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 농본사회였던 우리나라는 감나무를 대표적 기상예보의 지표목으로도 사용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감나무 헛 꽃이 많으면 그 해는 비가 많고, 잎을 빨리 떨구면 눈도 빨리 올 것이라 했으며, 뒤집혀 떨어진 잎이 많으면 눈도 많을 것이라고 했고, 감이 일찍 물들면 첫눈이 빨리 오고 풍년이 들 것이라 믿었다. 또 감 풍년이 들면 태풍이 오고 벼농사가 신통 찬을 것이라 했고, 감이 적게 열린 해는 눈도 적으며, 감씨가 많이 들면 추위가 심하고 눈이 적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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