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제언



정직한 사람이 강하다



청교도의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는 모든 교육의 출발을 정직함에 둔다. 초등학교 교과서의 첫장을 장식하는 '워싱턴과 벗나무'란 일화의 교훈이 바로 정직인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매우 아끼시는 벗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몹시 화를 내셨고 온 가족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어린 워싱턴이 용감하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그 정직성을 높이 사서 아버지는 워싱턴을 용서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위인의 어린 시절치고는 조금도 비범해 보이지 않는 단순한 일화를 미국 사람들은 열심히 가르친다. 정직이야말로 최선의 방책이라는 격언을 곁들여서 설명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교육은 무서운 것이다.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우리가 불효와 같은 실덕(失德)에 본능적인 수치심을 느끼듯 미국아이들은 정직성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거짓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반면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작은 거짓말'을 별다른 가책 없이 하는 듯 싶다. 악의가 없다고 우기기도 하고,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란 말도 한다. 남에게 큰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애교라고도 생각하고, 혹자는 융통성이라고 미화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정직을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 배웠다는 부모들도 아이들보는 앞에서 곧잘 거짓말을 한다. 귀찮은 전화라면 '아버지 안 계신다' 따위의 거짓말을 시키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거짓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이다. 그것은 또 이중 삼중의 기억을 필요로 한다. 작은 거짓을 시작해 놓으면 줄줄이 거짓으로 메워야 할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흡사 거대한 둑이 작은 구멍 때문에 무너지는 것과 같다. 살다보면 작은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윤동주의 싯구처럼 정직은 우리를 강하게 해준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보다 더 큰 자신감이 있겠는가? 정직은 실로 대단한 정신적 자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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