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섭목사/ 신평교회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마냥 예쁘고 아름답기에 수식어가 필요가 없다. 애지중지하게 양육했던 자녀가 이제 부모의 품을 떠나 마음껏 인생의 나래를 펴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대견스럽게 여겨진다. 바다에 파도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듯이 인생의 많은 고비를 넘겨 이제는 백발이 되고 얼굴에도 주름살이 잡히고 몸은 병들고 지친 어르신들도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것은 인간은 모두 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육체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내면에 보배롭게 간직한 영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존귀한 것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육적인 것으로만 채우려고 하면 늘 공허하다. 많은 사람들이 비어 있는 마음을 채우려고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고 애써보지만 그것 또한 뜬 구름을 잡는 것과 같다. 배움에 있어서도 죽을 때까지 배운다고 한다. 그래서 만족하려고 하지만 만족이 없다. 명예를 얻으면 더 높은 자리를 향하여 계속 달려가지만 그래도 허무하다. 돈 역시 벌수록 부족하고 가진 만큼 덜 가진 것처럼 여겨져 계속 벌어야만 직성이 풀리지만 그 또한 무지개를 잡는 것과 같다.


 


  영적인 사람은 영적으로 만족이 있다. 인간의 존재를 분명하게 알기 때문이다. 인간의 참다움을 알기에 육적인 것이 부족해도 만족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만족이 없고 늘 목마르고 배고프고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갈증을 해결해주실 분에게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돈에서 갈증을 풀려하고 명예에서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동분서주 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필자와 함께 살고 계신 어르신들은 대부분이 인생을 정리 할 시점에 있다. 병들고 지쳐서 꺼져가는 불꽃처럼 연약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들은 평생 의지하지도 않았고 무시했던 그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알고 이제는 참 행복을 느끼고 살아간다. 좋으신 하나님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늦게 믿게 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한 할아버지는 중풍으로  집에서 간호를 받으며 살았다. 한해 두해 지나면서 가족들이 지쳤고 수발하신 할머니가 병들어 가족과도 별거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 집에 와서 살고 계신다. 누워만 계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비틀비틀하면서 걸어오기도 하고, 찬송 소리가 나면 어디서 힘이 생기는지 절뚝거리며 예배당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때로는 오다가 덜렁 넘어져서 상처가 나기도 한다. 건강할 때는 자기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인생이 지치고 병들고 고달파서 이제라도 두 손 들고 하나님께 나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또 무엇이랴. 그동안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대적했던 사람들이 이제야 눈물을 흘리고 새벽에 하나님을 찾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리고 필자는 그런 그들을 사랑한다.


 


시편107편 4절에서 9절에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말한다. 독자 여러분도 이런 분을 만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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