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농악의 개요

 전라 우도농악은 김제평야를 중심으로 한 정읍, 전주, 익산 등지의 농악과 도서 해안지역의 진도, 완도, 해남 등지의 농악, 그리고 영광 조창을 중심으로 한 영무장(영광, 고창, 장성, 함평, 광주)등의 농악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영무장 지역에서는 임방울 협률사에서 활동하던 8인당과 여성 농악단을 비롯한 많은 걸궁패들이 활동 했는데, 영광은 상쇠에 정호풍, 전병남, 전경환에서 최용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장구는 김학준, 김만식, 김오채에서 이상호와 최은미 등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법고는 강대륙에서 김정숙, 조현정에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전문 걸궁패들이 모여서 문굿을 치고 마을에 들어가 당산굿을 하여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빌고 샘굿을 하여 생명의 원천인 물을 맑게 하여 집집마다 맺히고, 얽히고 막힌 원들을 풀어 서로 상생하게 했다. 이것은 사람들의 터전 중 가장 작은 단위인 마을을 올바르게 세우고 희망을 줌으로써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전문 마을 축제다. 영광 우도농악에서 해마다 벌이는 마을굿 축제는 이렇게 전문 걸궁패들이 해오던 마을굿의 원형을 지키고 발전시켜 오늘에 맞는 굿의 정체성을 만들고 가꾸어가는 전국에서 가장 전통성 있는 마을굿 축제다.




마을굿의 개요


 국가에서 지내던 설과 차례는 정월이 음력으로 10월 이었을 때다. 10월을 상달이라고 하는 것은 그때의 유습이며, 12월을 섣달이라 함은 10월인 정월에서 세 번째 달이어서 섣달이다. 참고로 10월에는 고구려의 동맹이, 12월에는 부여의 영고와 동예의 무천이 있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10월 상달을 기화로 국가 마차례(큰굿)가 먼저 있고 고을과 마을 단위로 내려가 차례가 치러진다. 그리고 영광은 마을굿을 추수가 끝나는 10월 상달에 풍농과 풍어에 대한 감사와 정성을 기원하는 굿으로 이어져 왔다.




발전 방향


현재 영광은 영광읍 우평리에서 해마다 마을 굿을 벌이고 있다. 묘량 영당에서 이곳으로 굿판을 옮겼다. 어울려 본 사람은 알겠지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신명은 거의 사람들을 무아지경으로 이끈다. 그런데 홍보의 부족과 공연장의 협소로 인하여 즐기는 이는 한정이 되어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영광에 농악을 배우는 전수자들이 상당히 많음은 자타가 인정하지만 잔치에는 손님이 많아야 한다. 엄청나게 좋은 자원인 영광우도농악을 우리 곁에 두고 살리지 못한다면 큰 문화적 손실이다. 참여단체만 해도 서울산업대와 46개 단체, 출연단체가 중요무현문화재 6호인 통영오광대보존회, 청년굿 초청자가 정읍농악 전수회의 서인석, 남사당놀이 보존회의 문진수, 광산농악보존회 김용철, 남원농악보존회 김태훈, 광양 법구놀이보존회 양향진, 또랑광대 김명자, 대구 농악보존회 배관호 등이고 이 외에도 흥이 맞으면 다수가 참가해 한판을 벌이는 것이 영광의 마을굿이다. 이정도면 영광전체가 걸판지게 한판을 놀아봐야 한다. 각종 면단위의 축제들을 지양하고 단오제와 우도농악의 마을굿을 군차원의 행사로 끌어 올려서 영광의 대표 문화로 삼아 전체 군민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승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다른 조그만 축제들을 줄여야 함은 물론, 전통문화를 위한 예산을 증액하고 우도농악 한군데로 집약해서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 주고 전국에서 가장 큰 마을굿을 일궈 내면 틀림없이 큰 성공이 따를 것이고, ‘통영’하면 오광대가 떠오르듯이 ‘영광’하면 법성포의 단오제와 우도농악의 마을굿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국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도 시장의 원리에 다름 아니다. 정치인은 바로 경제인이고 경제인은 내 가족을 위해서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고 개발하여 이득을 남겨야 한다. 영광은 다행스럽게도 많은 재료가 있다. 함평처럼 없는 것을 만들어 내야하는 고통을 격지 않아도 주위에 산재한 것이 많다. 무형문화재 영광우도농악은 우리에게 그런 의미에서 축복이다. 보완하고 가꿔서 고장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로 키우기에 온 군민이 마음을 보탠다면 전국대표 마을굿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협조 / 영광우도농악전수회 최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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