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장날은 북적북적하다. 일년중 제일 큰 장이다. 추석 대목장이 늘 그렇둣이 계송리 수남마을 화순댁 할머니는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며느리랑, 동네사람들이랑 말이 이웃이지 마을이 원래 영성정씨들만 대대로 모여 살아왔던지라 모두들 일가 친척이다. 올해는 뭘 준비할까 광주사는 큰아들, 서울 작은아들, 해남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는큰딸, 서울 둘째딸, 모두들 금년에도 내려오겠지 손주들까지 하면 서른명이 훨씬 넘어설 것 같다. 아마 시골집은 또 북새통이 될 것.

이제 며칠후면 터질 이 난리에 명절이라고 집 찾아온 아들 딸들을 배부르고 맛나게 잘 먹이고 싶어 할머니는 오늘대목장을 본다. 같이 사는 셋째며느리와...

계수나무와 소나무가 많다는 계송리. 남쪽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그래서 수남마을 대나무로 병풍을 둘러친 소담한 남향 기와집이 화순댁 할머니집, 집앞 조각노에선 누렇게 벼가 영글어가고 한켠 웅덩이에선 길쭉한 토란대들이 넓적한 잎들로 양산을 받쳐든채 손님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당엔 감나무에 달린 단감들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조롱박 넝쿨에선 다 자라버린 박들이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앞드려 있었다. 한가운데엔 우물이 있다. 돌사이에서 나오는 물이라 석간수, 몸에 좋아 옛날부터 마을사람들이 모두 이 물을 마셨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장수촌. 화순댁도 칠순을 바라보지만 할머니 소리를 듣기엔 억울할 정도로 젊어보이신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 웬지 그렇게 부르기엔 쑥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진짜 노인이다. 이분이 영광 노인학교의교장선생님(정대성)이고 그 분야에선 중추적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

아버님도 아흔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집안의 어른으로 우뚝 서 계신다. 평생 석간수를 마신 덕인듯. 고로 이 집은 4대가 모여 사는 집이다. 증조 할아버지, 화순댁할머니, 교장선생님 영광 중앙파출소 앞에서 한진택배를 운영하고 있는 셋째아들 정종권씨, 며느리, 손자 형철이 은철이 그리고 항상 은철이곁을 떠나지 않는 누렁이. 이들이 4대가 어우러진 가족이다. "우리집 가훈은 덕불고 필유인입니다.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이지요. 저는 이것을 아버님에게 배웠고 아이들에게 다시 가르쳐 주었습니다.

유학자이셨던 아버님의 가르침으로 일찍이 덕을 배우고 효를 실행한 정교장, 여러번 효자상을 수상했고 영광효도회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어느새 칠순이 되었지만 변함없이 든든한 가장, 평생을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살아왔고 장손으로 부모님곁을 떠날 수 없었기에 대부분을 집근처 영광서초등학교와 영광중앙초등, 영광초등학교에서 보냈다. 그의 곁에서 자라난 제자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듯...

"향교? 가보고 싶제. 벌써 일년이 넘은 것 같은데.."

향교에서 큰일을 많이 하셨던 증조할아버지(정병구)는 몇번째 석전제에도 못나가신게 서운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제는 거동하기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형철이 은철이 재롱을 받아주시는게 증조할아버지 몫.

"이제 영성 정씨 귀신이 다됐구만요. 힘들기도 했지만 외롭지는 않았제 다들 한 집안인게."

시집와서 시동생 일곱을 추스르고, 증조할머니 조부모 시어머니까지 네번의 상을 치러낸 화순댁. 5남매를 남부럽지않게 장성시키고 집안이 이렇듯 풍성해 질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녀의 내조가 당연 일등공신. 향교에서도 읍장님도 효도회에서도 그녀에게 효부상을 주었던건 다 이유가 있을 듯.

"그렇지 않아요. 아주 개방적이시고 이야기하면 열린마음으로 들어주세요."

유교집안이라 시부모님이 고지식할 것 같다는 물음에 며느리는 일거에 부정을 한다. 이제 화순댁할머니가 걸어온 길을 그녀도 묵묵히 따라 걸어갈 것이다. 아들 둘을 훌륭히 길러내고, 150년 지켜온 집터를 더욱더 굳건하게 다져 갈것은 분명하다.

'할아버지...' 학교에 갔던 형철이가 돌아오고, 유치원에 갔던 은철이와 누렁이가 집에오면, 수남마을 소담한 남향기와집 앞마당은 한가위 보름달 만큼이나 또 풍성해진다. 이제 타지에 나간 자식들도 하나씩 찾아들면 더욱더 그 달은 부풀어지리라.

박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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