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생전 처음 가는 길일지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길도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다.


 


아무리 복잡한 도시의 골목골목이라도 이리 저리 찾아 헤맬 일이 없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명칭이나 주소, 또는 상호만 입력하고 즉시 안내를 누르면 가는 길의 최단거리는 물론 좌우회전 방향까지 미리서 안내해준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위험 요소까지도 친절히 일러주며 사고에 대한 대책까지도 가르쳐준다.


 


어디 그 뿐이랴 네비 아가씨의 말투는 언제나 상냥하고 짜증내는 법이 없다.


 


오히려 복잡하고 체증이 심한 곳에서 짜증이 나고 고통스러울 때 운전자의 그런 기분을 달래주기도 한다.


 


나는 이런 네비게이션 아가씨가 실제로 있다면 그 아가씨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어찌 하랴!그리도 친절한 아가씨는 기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불과 십 몇 년 전만해도 세상은 인간 중심적 산업 사회가 최고의 가치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또는 민주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따위의 절대 이념이 와해되고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여러 가지 모순과 불합리성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과거 인간 중심 사회에서 인간 세계도 자연세계의 일부로 존재해야 한다는 생태주의로 탈바꿈 했다.


 


그 생태주의 속에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결합되어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되어 있다.


 


실질적으로 상충될 수밖에 없는, 과거 절대 이념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을 때는 도저히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현재는 가능한 것이 되어 인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태주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제3의 길을 단계적으로 거처야 하는데 이 길의 안내만큼은 네비게이션 아가씨에게 의존할 수 없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행정 등 동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 스스로가 그 길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제1의 길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실현이며, 제2의 길은 자본주의가 그 모순을 극복하고 마지막으로 변태된 것으로서의 신자유주의이고, 제3의 길은 사회 정의를 외치며 사회적 연대를 형성해 온 진보로서의 좌파와 신 우파의 결합을 통한 열린 민족주의와 앞서 말한 생태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추구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지 않는 환경주의[생태적 삶의 유지]와, 외적으로 사회적 공동체이며 내적으로는 개인주의의 심화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시 요구되는 것이 개인으로서의 책임이 극대화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생태주의는 지금 어디쯤 걸어왔을까?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위한 외침은 있으나 아직 개인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진짜 생태주의의 차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실정이다.


 


나의 외침 속에 상대적 피해는 없는지 숙고해야 한다. 지금은 과거 산업사회 속에 있었던 zerosum[제로섬] 게임의 시대가 아니라 상호 협력하는 정보화 시대로서 winwin[윈윈]의 시대이다.


 


사회 또는 국가나 민족,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되 그 책임 또한 각자가 져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나의 이익이 나만의 것이되 본질적으로는 생태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며칠 전 내가 방문했던 과천시 별양동 친구의 집에서 나는 정말로 기분 좋은 공문서 한 장을 보고 우리나라도 이제 그 생태주의에로의 진입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공문 내용인즉 “귀하께서는 국가가 지원하는 00복지정책의 수혜 대상이니 서류를 갖추어서 동사무소에 제출하고 그 혜택을 누리라는 것이었다.”


 


친구에게 자세히 물어보았더니 “과천시에서는 국가가 시행하는 각종 복지 정책의 수혜 대상자가 누구인지? 담당 공무원이 일일이 점검하고 그 대상자에게 공문을 발송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도 접수가 되지 않으면 다시 전화를 하고 그 댁에 방문하여 직접 그 절차까지도 친절하게 대신해준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바랐던 지방자치시대 서비스 행정의 백미라 해도 되지 않을까?


 


위의 그 친구가 던진 뒷말은 나를 더욱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동사무소에서 일부러 공문까지 보내 수혜자가 되라고 했는데 깜박 잊어버렸던 것을 접수 기간이 임박하여 집으로 찾아온 그 공무원이 고맙기도 했지만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수혜 대상자의 한 사람으로서 최소한 자신이 해야 할 서류 접수마저도 하지 못한 자신의 무책임함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고 했다.


 


말로만 하는 친절 봉사행정이 아닌 실천하는 서비스 행정. 우리 군은 어느 수준인가?


 


그리고 군민의 일원으로서 군에 요구하는 저마다의 목소리에 반해 우리는 군민으로서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책임을 질줄 아는가?


 


나의 이익으로 인해 발생될 상대적 피해에 대해 얼마나 숙고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개인이 어우러져 함께 가는 제3의 길을 가기위한 저마다의 네비게이션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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