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무산 자락에서

이형선/ 영광신문 편집위원

   나는 ‘Day'에 아주 둔감하다. 여태 아내의 생일이며 결혼기념일도 잘 챙기지 못하여, 아내는 이제 기대조차 하지 않는 눈치이다. 하긴 그것이 좋을 때도 있었다. 한번은 마음먹고 챙긴 적이 있었는데 감동이 몇 배가 되었는지 몇 년을 잊지 않고 되새겼었다. 올해 초. 집이 있는 읍내의 학교에서 군의 변두리 학교로 전근을 갔다.

 


 오늘은 인근 전라북도에 있는 학교의 초청을 받아 전 직원이 출장을 가서 연수시간을 가진 뒤, 체육관에서 친선 배구경기를 하고 인근 ‘청보리밭’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늦게 돌아왔다. 손님이 와 있었다. 손님을 배웅하고 계단을 오르다 보니 우편함에 편지가 꽂혀 있었다. “오늘 우편물은 다 가져왔는데?” 하는 아내의 소리를 뒤로하고 꺼내보니 작년에 가르친 남자아이의 편지였다. 생각해 보니 내일이 ‘스승의 날’이었다. 이 아이는 ‘내 일생에 이런 선생님은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라고 했던 아이인데, 내용은 작년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빡세게’ 가르쳐주셔서 자신이 달라졌다는 고마움과 함께 올해 우리 아이들의 소식들도 잊지 않았다. 흐뭇함을 가슴에 안고 느긋함을 누리려 목욕탕에 갔다 돌아오니, 또 손님이 와 있었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님을 배웅하고 다시 계단을 오르다 보니, 우편함에 또 편지가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작년에 가르친 여자아이의 편지였다. 이 아이는 올 초 나에게 전학을 보내 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는 아이였는데, 내 수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현재 학교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 스승의 날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스승의 날이면 속을 뒤집는 부정적인 소식에 대한 반작용 때문에 생긴 습관이기도 하지만, 스승과 교사는 엄연히 다르고 따라서 제자와 학생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그 구분을 나는 평소 이렇게 가르친다. “나는 직업이 교사이고 너희들은 학생이라 한다. 그러나 교실에서 서로 부를 때에는 너희들은 나를 선생님, 나는 너희들의 이름을 부르지. 그리고 우리들이 헤어지고 시간이 흘러 그 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고마움을 느낄 때에 비로소 나는 너희들의 스승이 되고 너희들은 나의 제자로 태어난단다.”


 


  사회는 인간관계의 집합이다. 인간관계의 중요한 요소는 일반적으로는 배려이고, 적극적으로는 사랑과 감사이다. 따라서 교육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 감사는 그런 일이 있을 때에 그것을 느끼게 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에서는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되면 감사의 편지쓰기를 지도하고 권장한다. 이제까지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는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 경로로 전달된다. 그 학교에 계시는 경우에는 모아서 혹은 개인별로 우표가 없이 직접 전달되고, 내 경우처럼 전근 갔을 경우에는 우표를 붙여 전달된다.


 


  두 편지의 봉투들을 보았다. 우표가 없는 편지였다. 이제까지 우표가 없는 편지는 맨송맨송한 느낌이었는데, 이 편지들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심장소리가 느껴졌다. 그들은 우표를 붙여서 보내도 될 것인데 내일 아침 내가 출근하는 적시(適時)에 그들의 따끈한 마음을 전하려 이렇게 늦게 우리 집을 몰래 다녀간 것이다. 우리 집은 읍내의 변두리에 있어서 그들의 집에서는 상당한 거리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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