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화화
장원의 /재경영광군향우회장



 

옛날부터 소에 대해 좋지 않는 편견이 많았다. 밥을 많이 먹고 자면 소가 된다. 소처럼 게으른 놈아, 소처럼 미련한 놈아 등 부정적인 말이 많다.


 


그러나 소는 영리하고 충직한 동물이다. 길에 옷을 벗어 놓으면 절대 밟지 않고 아무리 고달파도 들에 나가 일을 한다. 장에 팔러 가거나 도살장에 끌려 갈 때는 눈물을 흘리는 영성을 지녔는가 하면, 비록 주인의 하대에도 원망하지 않는 순종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 지치면 주저앉을망정 꾀를 부리지 않는 동물이 바로 소다.


 


최근에 영화 워낭 소리가 관객 2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40년 동안 할아버지와 동고동락을 함께 하던 소가 마지막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은 내 영혼의 밑바닥에서 굉음이 울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헤진 발톱, 장작개비 같은 다리를 끌고 허위허위 걸어가는 늙은 노우(老牛), 다리를 질질 끌며 불구의 몸으로 쟁기질하는 촌로(村老) 두 모습에서 내 아버지의 혼이 오버랩 되었다. 늙은 소와 절룩거리는 노인은 하나의 레일을 달리는 공통의 운명을 가진 동반자가 아닐까. 뼈만 남아 겨우 숨만 헐떡이는 노인, 그리고 늙은 소, 두 운명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삶에 대한 철학적 깊이를 담아냈다. 소를 팔아버리라는 할머니의 성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사위어가는 촛불 같은 늙은 소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충직한 모습은 어쩌면 내 아버지의 초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미 쓸모없는 소를 내다 팔지 못하고 여생을 같이 보내는 노인의 순박함은 그 옛날 내 아버지 모습이 분명하다. 멀리 객지로 나간 자식들보다 가까운 소는 단순히 일하는 일꾼이기 전 농부에게는 유일한 친구이면서 가족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노인이지만 소의 워낭 소리만은 귀신같이 알아듣는 농부, 불편한 다리를 절며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에 오른다. 무뚝뚝한 노인과 우직한 소, 그렇지만 두 영혼은 서로가 서로를 잘 화합한다. 기계를 쓰면 더 많이 수확하고 편한 것을 알지만 농부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일이요, 편하고 손쉬운 것을 거부하는 일이다. 일종의 물질만능에 대한 반항이다.


 


워낭 소리는 우리들 기억 속에 화석처럼 잠들어 있던 유년의 고향과 아버지와 소를 되살리는 주술과도 같은 영화다. 삶의 내리막길에서 빚어낸 소와 최 노인과의 아름다운 교감은 어쩌면 이 시대의 마지막 신앙일지 모른다. 폭우로 지붕이 무너져도 할아버지가 깰까 봐 조용히 장맛비를 견뎌내는 소, 우시장에 팔아버리려 해도 묵묵히 따라나서는 그 수순의 미덕이 눈시울을 적셨다. 할아버지와 늙은 소, 그리고 새로 구입한 젊은 소, 그 속에서 함축된 또 하나의 삶이 발견되었다.


 


워낭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맑다. 땡그렁 거리는 그 청아함은 우리의 영혼까지도 맑게 해준다. 그 소리는 소의 존재를 알리는 수단이면서 영혼의 교감의 순간이기도 하다. 큰 덩치에 비해 겁 많은 소, 골짜기에 소를 매 놓고 어두울 때까지 망각했다가 뒤늦게 소를 끌러갔다. 막태골을 넘으며 기침소리를 내면 무서워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던 소가 워낭 소리를 크게 울려 주었고 목욕을 시키거나 풀을 많이 뜬어 먹고 기분이 좋을 때도 워낭을 크게 흔들어주었다.


어렸을 때 해질 무렵 하천 도랑에 소를 세워 놓고 등에 올라타기도 하고 줄을 달아 썰매타기도 하여 친구처럼 살을 비비며 놀았던 유년시절. 리드미컬한 워낭 소리에 맞추어 소타기는 사막을 가로 질러 떠나는 상인들을 연상케 했다.


어느 날 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든 소를 팔러가던 일은 지금도 가슴 시리다. 장터에서 아버지와 거간꾼들이 흥정하는 것을 옆에서 보며 거래가 성사 되지 않길 은근히 바랬다. 그러나 그 소는 팔리고 말았다. 거래가 성사되어 워낭을 떼어 들고 올 때 눈물이 났다. 그런 날이면 며칠씩 밥맛을 잃었다. 


 


소는 농사철엔 주인에게 죽도록 일을 해준다. 새끼를 낳아주고, 나중엔 고기와 뼈로 사람들의 식탁을 장식해 준다. 봉사, 헌신, 살신성인의 표상인 소, 우리는 소의 해에 소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워낭 소리가 대지에 퍼지듯 우리에게도 그 맑고 밝은 한 해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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