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번호 : 전남기념물 제28호
 지정연도 : 1977년 10월 20일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22-2
 시대 : 조선시대
 크기 : 사당 정면 3칸 측면 2칸, 서원 정면 4칸 측면 3칸
 분류 : 서원


1977년 10월 20일 전라남도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1635년(인조 13)에 용계사(龍溪祠)라는 이름을 사액받고, 1702년(숙종 28)에 중수하였다. 그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4년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현재의 위치로 옮겨 다시 세워졌다. 최근 들어 임진왜란 400주년 재조명사업의 일환으로 1992년부터 연차적으로 유적지 정비사업을 하였다.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외삼문과 용계사(사당)를 중심축으로 외삼문, 내산서원, 내삼문, 사당 순으로 배치하여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랐다. 주변의 산기슭에는 강씨 문중의 무덤이 여러 개 있으며, 서원 뒤쪽으로 돌아 산을 올라가면 강항과 두 아내의 무덤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으로 아담하고 소박하며, 서원은 정면 4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이다. 외삼문은 근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내산서원 장서각에는 《강감회요》 목판과 《수은집》 《운제록》 《문선》 《간양록》의 필사본 등이 보관되어 있다.


강항은 강희맹의 5대손으로 1593년(선조 26)에 전주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박사, 성균관 전적을 거쳐 형조좌랑에 이르렀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李舜臣)의 휘하로 들어가고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왜군을 만나 투신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 가족이 모두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강항은 일본에서의 유폐생활 중 일본의 역사, 관제, 지리 등을 알아내어 《부중견문록(賦中見聞錄)》을 작성, 본국으로 보냈으며 일본에 주자학을 전하였다. 1600년(선조 33) 유배에서 풀려 귀국하였으나 그의 충절을 알아주는 이가 없자 자신을 죄인으로 자처하면서 귀향하여 후학 교육에 전념하였다.

영광 내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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