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은당 최윤화 선생

천하언재(天何言哉)하늘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귀로 들으려 말고 마음으로 생각해서 알아야지...





 새해 벽두부터 세찬 눈보라가 몰아친다. 서울 경기지방은 백 년 만에 온 폭설로 거리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멋지게만 느껴지던 새하얀 눈송이가 그 이면에 감춰진 무서운 모습을 보일 때 자연의 위대함에 새삼 작아지는 인간을 느껴본다. 쏟아지는 눈발에 은당 최윤화 선생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다가온다.


 


 추운 날씨 속에 어렵게 만난 은당 선생을 본 순간 살을 에는 추위가 봄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첫째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 버렸고 둘째는 옅은 미소 속에 가려진 여걸적 기품에 푹 빠졌다. 작은 찻잔을 내놓으며 “이 추위에 제가 뭐길래 오셔서.....” 말문을 흐린다.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한참 동안 찻잔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사실 저는 차 맛을 잘 모릅니다. 다인들이 말하는 다도를 느끼기에는 아직 수양이 많이 부족해요.” “다도도 하십니까?” “아니요 다른 사람들 차 마시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 흉내를 내보는데 마음 따로 차 따로 입니다.” 사실 기자도 차를 즐겨하는 편이었는데 본인이 이렇게 솔직하게 겸손을 보이니 내심 흐뭇해 한 마디 했다. “ 붓을 잡는 사람들은 모두 한결 같이 겸손의 미덕을 따르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그런데 저만 안 그런 같아요” 또 겸손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그녀를 더 알고 싶어졌다. 영광에 내로라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렇게 조용히 숨어 있었던 분은 처음이어서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붓을 잡은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언제나 그렇듯이 상투적인 질문이 먼저다. 그녀는 잠시 천정을 응시하더니 “한 십오 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언제 이렇게 갔는지 허송세월만 한 게 아닌지 싶네요. 그녀가 처음 광주 운암 조용민 선생을 찾아 갔을 때도 이렇게 눈이 내렸다면서 차 한 잔을 더 권한다.


 


 특별히 생각하고 있는 예술정신이 있는지 물었다.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것은 인생이란 게 꼭 붓의 흔적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붓이 지나 가는 흔적마다 인생이 느껴지거든요” 얼핏 이해가 안 돼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 획을 그을 때 조금이라도 정신이 흐트러지면 엇나가거든요. 인생도 집중할 시기에 딴 생각을 하면 엇나간 길을 가게 되잖아요.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한 획을 긋기 위해 먹의 농담을 조절하고 글씨의 크기에 따라 붓의 크기를 선택하는데 인생 역시 선택의 기로에서 강약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녀린 몸에서 너무나 깊은 철학이 흘러나온다. 그녀는 최근에 일거리를 찾았다. 평소에 마음 끝에 있던 봉사활동이다. 어르신들 몸을 닦아 드릴 때면 오히려 내가 지은 죄를 닦아 내는 것 같아 좋단다.


 


 “서예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찾는 겁니까?” 그녀는 아무 말 이 없다. 잠시 생각하더니 “글쎄요. 처음엔 무엇인가를 찾고 싶어서 서예를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제가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한 건 아니기에 그 목적 또한 정해진 게 없었어요.” “처음엔 의식적으로 붓을 잡았지만 언제부턴가 그냥 붓을 잡았던 거 같아요. 아마 습관이 되었든가 아니면 제가 좀 더 넓어 졌다고 해야겠지요” “예전엔 글씨를 잘 쓰는 것이 먼저였다면 이제는 글씨의 의미를 쓰게 되었어요.” 그녀는 어느새 인생의 멋을 아는 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서예를 해서 좋은 점이 무엇인가요?” “저는 남편과 두 아들의 어머니기도 한데 서예를 하면서 남편과 두 아들에게 소통의 의미를 훨씬 더 가깝게 전달할 수 있었어요. 제가 붓을 잡고 있으면 남편과 두 아들은 모두 제 주위에 빙 둘러 앉아 그 뜻을 묻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기도 하지요.” 이것을 일러 시쳇말로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일까?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세상에 그녀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자신을 길을 가는 예술인으로서 세 마리의 토끼를 잡은 셈이다.


 


 여성으로서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이슈가 되었던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이 땅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듯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은당 선생 역시 여성 서예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감내해야 할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목표가 없었다 하나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어려운 예술인의 길을 스스로 걸어 왔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은당 선생 역시 여느 여인에 다름 없을 것이다. 영광고을에 몇 안 돼는 여성 서예인으로 해야 할 일도 많지만 그녀가 가장 중시 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천하언재라! 하늘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귀로 들으려 말고 마음으로 생각해서 알아야지. 속이는 것도 사람이고 속는 것도 사람인데 그래도 은당 선생은 오늘도 사람 속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김혜경 시민기자


 


은당 최윤화 선생


홍농읍 상하리 출신


전라남도 미술대전 다수입선


한국예술협회 특선 동상


기독교 미술대전 입 특선


무등미술대전 입선다수


대한민국 현대문인화대전 입특선


모악서예대전 입선


남도 문인화대전 다수 입특선


한국서예협회 회원


광주서예협회 회원


한국서협 영광군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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