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민주주의 선진국들에게 민주주의는 ‘상식’ 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특별한’ 시대에 살고 있다. 수구 놀리 속에 민주주의가 함몰돼 가는 것은 아니길 빈다. 민주주의는 남에게 나를 양보하는 것이 아닌가”

 흔히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한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인 민주주의는 귀족과 군주등 독재 권력에 항거하여 얻어진 역사 때문이다. 민주주의 역사의 맨 앞에 나오는 영국의 청교도 혁명(1640-1660)은 청교도가 중심이 된 최초의 시민 혁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의회와 시민들이 국왕을 상대로 한 것이지만 피를 흘리지 않아 ‘명예혁명’으로 불린다.

 그래서 역사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연원을 프랑스 혁명(1789-1794)으로 기록한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자기를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유하기 위해 일어선 시민혁명의 전형이다. 이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많은 피를 흘렸다. 우리나라도 현 단계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까지 수없이 많은 피를 흘렸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드러난 첫 기록은 기미독립선언문의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한 대목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란 단어가 처음 쓰인 공식 기록은 정부 수립후 만들어진 헌법 전문이다. 말로만의 민주주의 공화국은 탄생했지만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1960년 4·19 민주혁명이 일어났다.

 프랑스보다 약 200년 늦게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많은 피를 흘리고서도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얻지 못하고 군부 독재에 의해 더 많은 피를 흘리는 역사를 기록했다. 5·18과 6월 항쟁을 치르고도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겨우 민주주의 국가의 틀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들에게 ‘민주주의’ 란 ‘상식’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특별한’ 시대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를 쟁취한 역사가 짧은 만큼 아직 성숙한 민주의식이 자리잡지 못해 ‘민주주의’가 ‘상식’이길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바란다면서도 생각은 비민주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장집 교수는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악화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비판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기득권 층의 수구논리 속으로 민주주의가 함몰돼 가는 것은 아니길 빈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민주주의 현실을 한번 짚어보자. 대통령은 정권 잡은 것을 나라를 얻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자기가 통치한 기념비를 세우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은 모습이다. 민주주의의 꽃이여야 할 국회는 상대당 발목 잡기와 시비걸기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듯한 모습 밖에 안보인다. 의사당을 때려 부수고 가두 시위를 하려면 뭐하러 국회의원이 됐는지 안타깝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모양이니 ‘소수’에 속하는 기득권층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 면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 법안을 100년만에 의회에서 통과 시킨 미국의 민주주의가 한국 민주주의에 자극을 주고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숙한 모습에서 한국 민주주의와 미국 민주주의의 차이가 보인다. 4·19 민주혁명 50년, 5·18 민주의거 30년을 맞으면서 민주주의는 남에게 나를 양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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