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나무가 제 수명을 누린다 - 노자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철학박사, 영광백수 출신)

떨어지는 별을 찬미한 뒤 62년 동안을 임신해 있었던 한 여인이 오얏나무에 기대어 한 아이를 낳았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태내에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었고, 그의 머리칼은 백설 같이 희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노자(老子)라 불렀다. 어느 날 공자의 방문을 받은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장사꾼은 귀중품을 감춰놓은 채 아무것도 없는 듯이 행동하고, 완전한 덕성을 갖춘 사람은 겉으로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일 뿐이오. 그러니 그대는 교만과 욕심과 위선 따위를 다 버리시오.”

 그 후, 공자가 다시 찾아왔을 때 이런 말도 덧붙였다.

 “총명한 사람이 죽을 고비에 이르게 되는 것은 남의 행동을 잘 비평하기 때문이오. 학식이 많고 말재주가 있는 사람이 자주 위험한 고비에 부딪치는 것은 남의 허물을 잘 지적하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자기주장을 함부로 내세워서는 안 되오!”

 그 자신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꺼려했던 노자는 그 철학 역시 그의 성품을 닮아 있다. 그에 의하면, 굽은 나무가 제 수명을 누리고, 자벌레는 몸을 굽혀 폄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고, 물은 파인 곳에 고이고, 옷은 닳아져야 새 것을 입으며, 욕심이 적어야 만족을 얻는다. 또한 유(있는 것)가 사용되는 것은 무(없는 것) 덕분이다. 가령 수레의 여러 바퀴살이 한 통에 모여 있긴 하지만 그 가운데가 비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수레를 사용할 수 있다.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 빈곳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릇에 물건을 담을 수 있다. 방을 만들되 그 가운데가 비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방을 쓸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비운 사람만이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는 일이 억지로 꾸며서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키를 높아 보이기 위하여 발끝으로 꼿꼿이 선 사람은 오래 서있지 못하고, 마음이 급하여 두 다리를 크게 벌려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하며, 스스로를 나타내려는 사람은 도리어 드러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노자는 우리에게 무위자연에 처하여 소박하고 유연하게 살아갈 것을 가르친다. 이런 의미에서 현자란 물을 닮은 사람이다. 물은 모든 사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먼저 가려고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려 한다. 이러한 물과 같이, 현자는 이웃에게 선을 베풀며 유익을 안겨주면서도 다른 사람 앞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항상 겸손한 자세로 살아간다. 하지만 부드러운 물이 견고한 바위를 뚫는 것처럼, 부드러움은 딱딱함을 이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진 자가 결국에는 천하를 얻는다.

 노자는 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악에 대해서까지 포용하기를 가르친다. “적에게도 덕을 베풀라. 오직 다투지 않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천하가 그와 더불어 다툴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덕을 두터이 지니고 있는 사람은 갓난아기와 같아서 독 있는 벌레도 물지 않고, 사나운 짐승도 덤벼들지 않으며, 사나운 새도 채가지 않는다.

 기원전 6세기 무렵에 생존한 노자는 도가 및 도교의 비조(鼻祖)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유가에서 내세운 명분주의와 인위적인 조작에 반대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국경을 넘다가 그곳을 수비하던 관리가 권하여 노자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죽간(竹間)에 오천 자의 글을 써 주었다. 바로 이것이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철학을 담은 <도덕경>이다. 그는 백 육십 세 또는 이백 세를 살았다고도 전해지는데, 그 최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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