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2013년 새해 첫날의 아침 해를 보기 위해 이른 새벽 당신은 산에 올랐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힘차게, 그리고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당신 또한 지난 날에 견주어 밝아오는 새 해를 보다 알차게 기약(望年) 기약하고 소망하기 위해서다.

산정에 올라서서 기다린 보람도 없이 아침 해는 찬란히 떠오르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떠오른 해가 희뿌연 운무에 가려져 기대한 일출의 장면을 볼 수가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가까운 산들의 공제선(空際線)엔 이미 낙엽을 떨꾼 겨울 나목들에 의한 산등성이 윤곽이 섬세한 붓의 텃치처럼 굴곡져 이어지고 골짜기 마다, 간간히 펼져진 들판마다에는 새하얀 눈에 덮인 들판이 텅 빈 캔버스의 이미지로 눈에 들어온다.

당신은 그림을 그려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자화상, 그리고 그 위로 오버랩되는 수많은 환경과 현상과 기억들.....

당신은 지워버리려 하지만 그 다짐의 현장에서 다시 그려지는 당신의 지난날 그림들...

당신이 고민했던 사회주의의 환상과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현실적 도래, 서구에서 출발한 문명의 축이 빠른 속도로 동양을 향해 수평이동하고 있는 흐름에 민감하게 적응하지 못하는데에서 오는 어지럼증, 한바탕 홍역을 치르듯 한 대선의 엉뚱한 결과물로 나타난 세대간의 갈등구조(이것은 어쩌면 사회 현상이나 역사의 흐름에 의한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의식에 의해 조장되어진 일시적인 것이기에 쉽게 해소 될 수도 있지만)...등 이러한 것들이 당신의 추상화라면 지금 당신 앞에 그려지고 있는 사실화는 보다 더 뚜렷하고 명징한 색채로 나타난다.

잠시 동안 그려진 당신의 몽환(夢幻)적 추상화 속으로 산 까치 한 마리가 날아든다. 당신의 손이 닿을 수 있는 바로 그 앞까지.

10여일 가깝게 눈에 덮인 산 속에서 굶주린 산 까치는 혹시라도 당신이 간식으로 가져와 먹다 떨어뜨릴 수도 있는 과자 부스러기나 과일 한 조각이 절실한 것이다.

당신은 또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

“지금 내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저 새의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발가락이 시려온다. 내려다보니 등산화 윗부분에 쬐끔 묻어있던 눈이 녹아내리고 있다.

다시 등산화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너의 여정은 무엇이었더냐?”

따뜻한 안방의 이불 속에 묻어두었던 양말의 온기에서부터 힘차게 출발한 새벽길은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지고 고단해지는 것이었다. 물기에 젖은 논둑길을 지나고, 돌부리 채이는 자갈 밭 길을 비틀거리며 눈 덮인 등산로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거친 숨 몰아쉬며 걸어 온 길.

당신이 가야 할 길은 다시 저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다.

“저 길로 나는 어떻게 가야 할까?” 잠시 동안의 생각을 접고 당신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다시 그 길을 간다. 어쩌면 그 길은 당신만이 가야할 당신만의 길인지도 모른다. 하여 당신은 잠시 동안의 고민 끝에서도 주저함 없이 그 길로 들어섰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등산화에게 묻지 않는다.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당신의 인생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 신발에게 고마워할 뿐이다.

백설이 잦아진 곳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퓌엿는고/ 석양에 홀로 서 서 갈 곳 몰라 하노라-이색-

당신의 매화를 찾지 못하고 해가 저물었어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언 손을 포근히 감싸주고, 헤진 옷섶을 여며주며 내일을 향해 당신이 꿈꾸는 모든 것들과 함께 걸어갈 줄 아는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