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영광신문 편집위원

1800년대 말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 전해지는 이야기. 지금의 MIT대학의 전신인 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고학생이 있었다. 그는 그 지방 유지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여자의 집안에서 둘 사이를 무척 반대했고, 둘을 갈라놓기 위해 여자를 멀리 친척집으로 보내버렸다. 

 

남자는 그녀를 찾기 위해 몇날 며칠을 헤매고 다녔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그는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해매이다 무작정 그녀의 집 앞으로 갔다. 그런데 마침 그녀가 집에 돌아오는 길이어서 둘은 극적으로 만났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 내일 결혼해" 

 

잠시동안 침묵이 흐른 뒤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내가 담배 피우는 동안만 내 곁에 있어줘..." 

 

여자는 고개만 끄덕였고 남자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당시 담배는 지금처럼 필터가 있는 담배가 아니었다. 종이에 말아 피는 잎담배로 몇 모금 빨면 금새 다 타 들어가는 그런 담배였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여자는 집으로 들어갔다. 둘은 그렇게 끝났다. 

 

이 남자는 여자와의 마지막 시간을 좀 더 오래하고 싶었으나 야속하게도 담배는 금새 타 들어갔고 남자는 너무나 빨리 타버린 담배 대문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바로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후에 친구와 동업하여 세계 최초로 필터가 있는 담배를 만들었다. 그리고 보란듯이 백만장자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남자는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남편도 죽고 혼자 병든 몸으로 빈민가에서 외로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수소문 끝에 그녀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집에 갔을 때 남자를 맞이해준 것은 목을 매단 채 싸늘하게 식어있는 그녀의 시신이었다. 그 후 남자가 만든 담배의 이름이 바로 '말보로' 였다.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항상 사랑을 기억한다)라는 말의 앞 글자를 따 만들어진 것이라 전해진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니면 꾸며낸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애연(愛煙)가들에게는 식후에 담배 한 개비 피우는 기분만큼이나 달콤하고 편안 하면서도 애잔하며 로맨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요즈음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 참으로 설자리가 없다. 식당은 물론 웬만한 공공장소나 심지어는 길거리에서조차 담배를 피울 수 없으니 죽을 맛이다. 기껏해야 선심 쓰듯 따로 흡연 장소라고 정해준 한쪽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빨아대는 측은한 모습이라니... 마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같다. 집안에 들어가면 “담배 냄새가 난다”며 가족 모두가 아예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에이 빌어먹을 담배 나도 끊어버리자” 독한 마음을 먹고 금연을 시도해보지만 작심삼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또 난리다. 흡연 인구를 줄이기 위해 담배 값을 대폭 인상하려한다는 뉴스다. 국민건강을 위해서 또는 비흡연자들의 간접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란다. 

 

“답배 값 올린다고 흡연가들이 사라질까?”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다.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한다면 차라리 전매공사를 없애고 담배를 생산하지도 않고 판매 하지도 않으면 될 것을, 모든 마약을 법으로 금지하듯이 흡연도 법으로 금지하면 될 것을 왜 “금연을 유도 한다며” 애연가들의 쌈지돈만 털어내려는지...? 똑같은 기호품으로써 술에 대한 노란은 왜 없는 건지?

 

봄은 동방에서 꽃수레를 타고 온다는데/가을은 지금 머언 사방에서 내 파이프의 연기를 타 고 온다. 

 

1920년대 동인지 “폐허”를 이끌었던 공초 오상순 시인의 두 줄 시 청동산맥이다. 

 

한 개비 길이 7㎝×20개비×4갑=560㎝,이것이 하루치 길이요. 560㎝×365일-2044m,이것이 또 1년치 길이요. 2044m×70년=14만3080m,즉 143㎞.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붙이기 시작한 담배를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놓지 않았다는 오상순을 앞에 두고 부산 피란 시절 어느 물리학자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계산을 했다. 

 

평생 피우는 담배 길이가 얼마나 될지가 화제가 돼 나온 일화다. 그런데 실은 그의 하루 흡연량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시인 공초 오상순>에서 회고한 대로라면 그는 보통 하루에 180여 개비를 태웠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 생존해있다면 무순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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