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호白淡毫와 상사화

영광의 역사와 옛 이야기를 담은 ‘영광군 명승지 및 민속자료 스토리텔링’으로 영광이야기가 발간됐다. 본지는 영광이야기의 지역 문화 유산 가치를 재인식하고자 특집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경운스님과 진희수 공주의 순결한 사랑

불갑사 참식나무와 상사화에 얽힌 이야기 

 

옛날 백제25대 무령왕武寧王(재위 : 501 ~ 523 ; 신라 법흥왕法興王, 재위 : 514 ~ 540) 때 조석으로 운무가 서서히 감싸는 신령스런 불갑사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이 불교수업을 위해 불갑사를 창건한 마라난타의 고향인 간다라지방으로 유학을 하였는데, 총명한 경운(敬雲)스님도 유학을 떠났다.

어느 날 그 나라 규샨왕이 온 가족과 함께 경운 스님이 있는 절의 법회(法會)에 참석하였다. 왕을 따라온 17세 된 진희수(珍稀樹)라는 공주는 학덕이 높고 외모 또한 뛰어난 경운스님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공주는 자주 절을 찾아 법회에 참석하였다. 하루는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공주를 보고 공주의 어머니가 말했다.

“진희수! 오늘도 절에 가니” “네” “법회를 싫어하던 네가 웬일이니” “어머니 저도 이제 붓다(Buddh)a의 말씀을 익혀야지요.”

공주는 붓다의 말씀보다도 사랑이 익고 있었다.

스님도 그녀가 맘에 들었다. 스님은 그녀를 위해 간다라의 추석명절에 그녀에게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스님은 자신이 걸치던 가사 이외에는 가진 것이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스님은 영광에서 신도들이 짜준, 적갈색 모시로 된 가사와 미영에 물들인 천을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녀는 조금 당황해 했지만 아주 기뻐했다.

스님은 그녀가 언제 선물한 천으로 사리Sari를 만들어 입고 다니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4 ~ 5일이 지난 뒤에 아주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 자신이 입고 있는 사리가 좋아 보이냐고 물어보았고 이에 스님은 적잖이 놀랐다. 왜냐하면, 그 녀는 스님이 준 적갈색 면이 아닌 노란색의 사리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공주가 이런 식으로 적갈색 보다는 노란색을 선호한다고 알려주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선물한 적갈색 천을 노란색 사리와 교환한 것일까’라고 생각하며 궁금해 했다. 하지만 의문은 주지스님을 방문한 공주의 한 사촌에 의해서 곧 풀리게 되었다. 그는 “아니에요, 아마, 젊은 여자들은 맘에든 사리감이 생기면 자신이 결혼할 때 만들어 입을려고 간직해 두기 마련이지요. 그녀는 분명 스님이 준 영광실크를 소중히 간직해 두었을 거예요.”라고 했다.

이들은 결국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비가 몹시 내리는 날 경운스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공주는 몰래 평민들이 입는 사리를 입고 절을 찾았다. 비에 젖은 공주! 그리움에 젖은 스님은 간절한 사랑에 빠져들었는데, 사랑에 빠진 공주의 하루 일정은 예전과 달리 불규칙적이었다. 그날은 궁중에 행사가 있어 공주는 궁궐을 빠져 나올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몰래 궁궐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갔다.

인력거를 타고 절로 향하면서 공주는 자신들의 생계를 궁궐이나 사원에 의존하고 있는 여인들을 보았다.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면서 공원주변을 공허하게 맴도는 그들의 순회가 블라우스를 걸치지 않은 팔들과 푸석푸석한 피부와 깍은 머리를 대강 감싸고 있는 옅은 갈색의 사리를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것은 공주를 화나게도 하고 절망하게도 했다. 그건 마치 가족으로부터 쫓겨났거나 가족을 잃은 무일푼의 과부들에겐 과거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것이 없다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거리에는 변함없이 호의호식하는 여자들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번쩍이는 값비싼 사리를 입고 온몸을 보석들로 치장하고 다녔는데 예를 들면, 두꺼운 금 목걸이, 다이아몬드 코걸이와 귀걸이, 팔찌, 발찌 등등 자신들의 살찐 몸뚱아리 여기저기에 치렁치렁 달고 다녔다. 이런 부류의 여자들은 대부분 중년이거나 노부인들이었고, 그들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선 아침에 나는 신선한 쟈스민 향기가 났다. 인도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대체적으로 여자들이 사리로 자신들의 머리를 덮어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계층의 여자들이 자신의 땋은 머리를 꽃으로 장식했다.

서로에게 과시하면서 멋을 부린 채 과도하게 치장을 한 여러 무리의 여자들을 보면서 공주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고 반성하였다. 그러면서 공주는 할머니의 소박함을 점점 더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왕의 어머니였음에도 그녀는 행사 때 입던 단 한 벌의 비단사리 이외 보석 하나 없었고, 면 소재의 옷 외에는 어떤 것도 입지 않으려는 소박함이 있었다. 할머니는 결코 자신을 싯다르타 추종자라고 말한 적이 없지만, 공주가 알고 있는 많은 싯다르타 추종자들처럼 생활했다.

화려한 색깔의 사리를 입은 날씬하고 우아한 무리들,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야한 복장의 여자들, 몇 명의 아이들을 거느린 임신한 여성들, 우주의 본성이나 참모습을 깨달아 모든 번뇌를 소멸한 붓다처럼 좌정한 사람들 속을 지나 인력거는 언덕길로 향했다.

그 해는 가뭄이 심했고 한번 비가 내렸다하면 아무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내렸다.

9월의 그날, 심술궂은 신의 찌푸린 얼굴처럼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큰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불과 몇 초 만에 온 천지를 적셔버렸다. 인력거 안에 앉아있던 공주도, 하녀도, 인력거꾼도 흠뻑 젖었다.

그들은 언덕 밑에 삐죽 튀어 나온 바위 아래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거기에는 벌써 배가 올챙이배처럼 뽈록 튀어나온 두 마리의 암 염소가 비를 피해 들어와 있었다. 공주는 그 염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섰다. 그중 한 마리가 체계적으로 공주를 밀어 내기 시작했고 공주 역시 질세라 발을 땅바닥에 쾅쾅 구르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하녀는 그 녀석에게 그 자리를 꼭 지켜야한다는 걸 보여주길 원했다. 그러자 그 녀석은 머리를 숙인 채 풀쩍 뛰어 오르면서 불시의 기습을 가했다 순간 하녀와 공주는 균형을 잃었고 할 수 없이 미친 듯이 퍼붓는 폭우 속으로 밀려 났다. 그 녀석은 좀 전의 그 자리에서 아주 사악한 노란색 악마의 눈빛을 깜빡이면서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공주는 정말 그곳을 떠나기 에는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역한 냄새를 풍기며 공격하는 염소를 이겨내지 못 하고 인력거와 하녀를 시내로 돌려보낸 후 그곳을 떠나 절을 향해 뚜벅 뚜벅 걷기 시작했다. 눈물과 빗물이 한데 섞여 공주의 뺨을 타고 흘렀다.

비에 젖은 공주! 그리움에 젖은 스님은 간절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공주가 다시 궁으로 돌아 왔을 때 어머니와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녀로부터 모든 사실을 듣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왕은 부인과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절의 주지에게 경운스님을 본국으로 추방하도록 하였다.

“내세에서라도 우리 사랑을 맺자” 이별의 슬픔을 가눌 길이 없는 공주는 “내세에서라도 우리 사랑을 맺자”고 하면서

작은 화분에 나무 한그루와 씨앗을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불갑사로 돌아온 경운스님은 이 나무와 씨앗을 정성껏 심었다. 이 나무가 백담호 라고도 불리는 참식나무이다.

스님은 백담호를 정성껏 가꾸며 그리움을 달랬고, 바람과 눈과 비를 맞으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간혹 간다라에서 돌아온 스님들이 있었지만 공주의 소식을 묻지 않았다. 맺을 수 없는 인연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노승이 된 경운스님은 참식나무 밑에서 좌정하여 ‘같이 있어도 같이하지 못하듯 함께하지 않아도 같이 있음’을 되뇌이면서 열반에 들었다. 스님이 가시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 공주를 만났던 9월이 오자 스님이 좌정하였던 참식나무 밑에 꽃이 피어올랐는데, 스님의 말씀처럼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도 한 뿌리이기 때문에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하여 헤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꽃’이 피어올랐다. 이를 본 불갑사 스님들은 경운스님의 사연을 떠올리면서 - 애잔하 고 슬픈 추억 - 상사화라 이름하였다.

“당신의 가사가 아직 여기 있어요. 언제 그것으로 만든 사리를 입은 나를 보려 이곳에 오나요?” 그녀는 가끔씩 이렇게 쓴 편지를 보내곤 하였다. 그리고 그가 떠날 때 서럽게 울긴 했지만 참식나무가 그곳에 남아 있는 한, 분명히 그녀를 보러 돌아온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 전설은 불갑사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사랑 이야기는 경운스님의 예에서 보듯이 그리워하는 마음이 현대사회의 사회적 생산력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상생활 속에선 점점 더 증폭되는 시간과 공간의 압축에 의해 그리움의 정도가 덜 경험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느긋한 명상의 행위와 또는 ‘정지’와 그리움의 순간들을 통하여 그리운 기억들이 회복될 수도 있고 잊혀졌거나 내버려진 역사들을 다시 의식의 표면으로 불러낼 수 도 있다.

백담호와 상사화전설은 그저 금욕에 대한 종교적 논의나, 또는 그리움 자체나, 향수와 기억과의 관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승녀사회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문학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 전설은 스님이라는 절제자와 공주라는 부와 권력이 절이라는 공간에서 어떤 종류의 관계와 장소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 일련의 상징물을 소재로 사용한다. 이 전설에 나오는 수도승과 공주의 만남에서 필연이란, 인연이란, 우연이란 것 등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헤어짐이라는 것을 통해 유는 무가된다는 불법에 대한 은유적 표현을 담고 있다. 이 은유적 표현을 통해 ‘고결한 불교’를 홍보하는 기능이 숨어 있고, 그런 애증에 대한 기억을 통하여 과거를 회복하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는 개념이 이 전설 속에 내포 되어있다.

경운스님은 붉은 꽃을 통해 떨어져 함께하지 못해도 함께할 수 있다는 도를 깨우친 것으로, 그리고 현재는 과거와 미래에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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