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된 스님

불갑사 대웅전의 각종 조각은 특이하고 아름답다. 창살 무늬는 보기 드문 눈송이 모양이고, 건물의 내부는 2개의 고주로 대들보를 받쳤으며 그 위에는 종도리와 용 모양의 충량을 걸쳤다. 불단 위에는 불전형 아자(亞字) 평면의 닫집을 설치했다. 닫집 천장에는 7마리의 용들과 연화봉, 구름과 극락조들이 현란하게 날아다니며 불국토를 재현하고 있다.

대웅전 내부에는 포벽과 측벽에 다수의 벽화가 장엄되어 있는데,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까치 및 학이 그려진 벽화이다. 이 벽화는 신중탱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대웅전 사중창 당시 이름 있는 한 조각장이 찾아와 스스로 일할 것을 원했다. 주지스님은 승낙을 하였다. 조각장이는 말하였다.

“제가 조각 일을 끝마치는 동안 절대로 부정한 여자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해 주십시오.”

“부정하지 않은 보살은 괜찮단 말이요?”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대웅전의 대들보를 조각하는 동안에는 맑은 영혼으로 몰두해야 하기에 대웅전 내에 여자는 출입을 금하게 해주세요.”

몇 달이 지났다. 그리고 밥을 하던 보살도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다. 주지스님은 새로 들어온 보살에게 대웅전에 밥이나 술참거리를 나를 때 절대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각별히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밥을 해 나르던 여인은 자기가 온지 수일이 지나도록 대웅전에서 나오지도 않고 일만 계속하고 있는 조각장이가 하도 궁금하고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도 이상하여 대체 무슨 일을 하나 싶어 문틈으로 엿보았다.

그 순간, 창살을 만들던 조각장이는 그만 피를 토하고 죽고, 그 피는 까치 한 마리가 되더니 멀리 날아갔다고 한다.

그 후 대웅전을 완성하고 그 조각장이를 기념하기 위해 불상 뒤 켠 벽에 까치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많이 퇴색되었지만 대웅전 외부 동쪽벽에는 인왕상이 문 좌우로 묘사되어 있고 내부측벽에는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학, 매화, 포도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포벽에는 판벽화로 나한도가 묘사되어 있다. 또한 후불벽 후벽화로는 연잎을 타고 유유하는 백의관음상이 그려져 있다.

이 전설은 4중창 때 혹은 6중창 때 생성된 이야기이다. 전설이 전해 오면서 까치로 변한 사람은 탱화를 그리던 화사(畵師)로, 또는 문의 창살을 조각하는 훌륭한 목수스님으로, 또는 대들보 등을 조각하는 조각장이로 지칭되기도 하고 본래 조각장이는 까치였다,

조각장이는 그림 속의 까치가 되었다는 등으로 전해 내려온다.

 

 

사천왕상四天王像이 불갑사로 온 사연

사천왕상의 설화

천왕문 안에는 전북 무장 소요산의 폐사된 연기사에서 옮겨왔다고 전해지는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이 사천왕상은 1870년 설두(雪竇)대사가 불갑사를 중창하면서 전북 무장 소요산의 폐사된 연기사로부터 목선 4척을 동원하여 옮겨온 것인데, 높이는 약 430cm, 어깨너비는 약 120cm이다. 여기에 하나의 재미있는 설화가 전한다.

불갑사를 중창하느라 몹시 피곤했던 설두대사는 어느 날 깊은 잠에 빠졌다. 꿈속에 안개 자욱한 산길을 홀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사천왕이 비를 맞은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는 연기사에 있는 사천왕인데 이곳으로 옮겨 지붕을 씌어주면 불법승을 잘 보호하겠다”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스님은 곧바로 무장 소요산으로 향했다.

허어! 연기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 산속을 하염없이 헤매던 스님은 산 깊은 곳에서 연기처럼 안개가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이윽고 폐허가 된 사찰 터 난전에 서있는 사천왕을 발견하였다.

스님은 꿈속에 나타난 사천왕의 말을 따라 그대로 하였다. 그로 인하여 불갑사는 실제로 여러 번의 화재 위험을 무사히 넘겼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설두(雪竇 1824 ~ 1889)대사는 고종 7년(1870)에 각진국사의 주석도량이 폐허로 변해가는 것을 슬퍼하여 홀로 백양사에서 불갑사로 내려와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전각들을 보수하였으며, 고창(무장) 연기사 터에 있던 사천왕상을 옮겨 불갑사에 봉안하였다.

설두대사는‘동사열전’에서 조선말기 불문(佛門)의 삼걸 가운데 한분이라고 일컬으며 백파문하의 용상으로서,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가 사변만어를 지어 백파스님의 선문수경을 비판하자 설두대사는 선원소류를 저술하여 스승 백파스님을 옹호하고 초의와 김정희를 통박하고 나섬으로서 조선후기 선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설두대사에게 준 휘호가 현재 백양사에 있는데 백벽(白璧)이란 제하에 “백파문인이 종법을 모아 드날릴 것이니 대기대용 이 두 글자를 써서 설두상인에게 주노라”라고 되어있다.

추사선생의 예상처럼 설두문하에서는 근세의 뛰어난 용상들이 많이 나왔는데 다륜, 설유, 금화, 학명, 석전(박한영)스님 등이다.

사천왕은 동서남북 순으로 지국천왕(持國天王) 증장천왕(增長天王) 광목천왕(廣目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인데, 이들을 사방(四方)에 따로 배치하지 않을 때는 보통 천왕문 왼쪽에 지국천왕과 다문천왕을, 오른쪽에 증장천왕과 광목천왕을 둔다.

이 사천왕상은 각각 검, 용과 보주, 비파, 탑 등의 지물을 들고 앉아 있는 의좌상으로 천왕문 양쪽에 2위씩 봉안되었다. 사천왕은 각각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입고 있는 갑옷이나 천의(天衣) 역시 화려한 색채로 역동적인 자세와 함께 바람에 날리도록 표현되었다. 앞에서 볼 때 오른쪽에 동방지국천왕과 남방증장천왕, 왼쪽에 북방다문천왕과 서방광목천왕인데, 넙적한 얼굴에 큰 눈과 입, 송원대의 갑옷 등 조선 후기의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동방지국천왕을 보면 화려한 보관에 뒤편에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었다. 보관 전면에는 비천상이 있으며, 정면 중앙에는 봉황두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얼굴은 사천왕 특유의 무섭고 위엄이 있는 모습이다. 두 손에는 비파를 들고 발밑으로 악귀를 내려딛고 있다. 남방증장천왕은 보관에 2구의 비천상이 있는데 그 중 한 비천은 피리를 불고 있다. 전면 중앙에 봉황이 조각되어 있고 보관 뒤로는 불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고 왼손에는 지물이 없다. 서방광목천왕은 역시 화려한 보관에 비천상 2구가 하늘을 날고 있는데 1구는 악기를 들고 있다. 주위는 연화문, 뒤로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었다. 왼손에는 보주, 오른손에는 뱀을 들고 있는데 뱀 머리는 용두화 되어있고 양다리는 악귀의 가슴을 딛고 있다. 북방다문천은 보관에 2구의 비천상이 조각되었고 주변으로 활짝 핀 연화가 천상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뒤편으로 불꽃무늬가 장식되고 오른손에 긴창, 왼손에는 작은 보탑을 들고 있다. 원래 사천왕의 뒤에는 1904년 3월에 화남 재기(和南 在基) 스님이 증명이 되고 금상 유성(錦庠 維星) 스님이 화주가 되어 조성한 사천왕 탱화가 봉안되어 있었는데, 모두 4점이지만 3점이 남아 보관상 별도로 봉안되고 있다. 이 사천왕탱화가 조성되던 무렵에는 이 전각을 천왕전(天王殿)이라 하여 한층 격을 높여 불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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