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교수,영광신문 편집위원

F세대를 아는가. 나이 마흔 전후의 세대이자 금지된 세대라고 이름지어져서 F세대로 불린다는 이 세대는 1966년부터 74년까지를 일겉는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중 750만명을 차지하고, 베이붐세대(58년생 기준)보다도 많은 연령대다. F 세대의 'F' 는 'Forgotten', 'Fire', 'Facebook', 'Formidable members'를 두루 의미한다 한동안 정치 사회적으로 잊혀졌던 세대, 50대인 '베이비 부머 세대', 20대 '88만원 세대', 10대 '살인경쟁 세대'에 의해 가려져 있었지만 한쪽에서 분노를 키워 온 세대로, 50대 60대와는 다르게 페이스 북 등 SNS로 무장되어 있고, 머리 수가 많아 뭉치면 엄청난 유권자 층이 되는 세대가 F 세대이다. 사실 생각해보니 우리 세대들에 대한 담론이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는 섭섭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사실 F세대는 치인 세대이다. 똘똘 뭉친 보수성향의 윗 세대들과 88만원 세대라면서 자조하는 성향을 가진 훗세대 사이에 우리 세대는 끼어서 제대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시대의 굴레 속에 살았다. IMF로 인해 실업이나 취업난을 겪은 세대이고, 금융위기 같은 상황도 온 몸으로 받아냈던 세대이다. 사실 운동권 하던 386세대들의 뒷치닫거리 역할을 하다가 공부도 못하고 경제위기로 취업의 위기를 겪었던 것도 우리세대의 보편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때 이 F세대의 특성을 말해보라 누가 묻는다면 한마디로 ‘뒤쳐지지 않는 삶’이라고 본다. 사실 사십대에 들어서 직장인으로서 번듯한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한 부부라면 그 삶은 지난날 지겨운 경쟁에서 잘도 살아남은 축에 속한다. 대학입학, 취업, 결혼, 육아, 집장만에 이르기까지 그 이십 여 년의 세월은 분명 메인 프레임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이념투쟁이라는 추상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행복이나 실질적인 혜택 등의 실용적 가치이다. 그래서 명예나 도덕을 따지는 사람은 위선이라 여기며 속물정신이나 편법 등의 수법으로 성공한 사람을 크게 비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도 언제든 기회만 되면 그렇게 해서라도 한 계단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준화 속에서의 궁극적 차별화. 삼성을 욕하지만 삼성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얼마나들 많았는가. 역사의식과 사회참여도 도덕성, 지식수준도 386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심지어는 머리가 나빠 공부도 못하고 날라리만 많은 세대라. 운 좋게 취직해 지금은 사회의 중진이 되었건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 이들에게 향후 십년은 이제 막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 붐 세대의 십년과도 다르며 결혼과 육아를 늦추고 있는 삼십대의 십년과도 다르다. 이들의 미래 십년은 정확하게 한국이 선진국으로 돌입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그런데 지금부터의 십년은 F 세대의 자녀들이 성장해 성인이 되는 세월이다. 지출항목이 더 많아지고 커지기만 하는 시기, 평범한 직장생활로는 더 이상의 재산증식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시기이다. 여기까지 잘 달려온 세월에 미안해서라도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쉽지 않고 어쩌다 추락할까봐 두려운 시기이다. 그 전에는 성장이나 발전도 중요했지만 지금부터는 복지라는 말이 아주 구체적으로 와 닿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 몇 해 동안 양극화 때문에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와 절망을 감추기 어려웠던 시기인 것이다.

불안한 F세대는 복지담론에 관심을 갖고 있다. 부자의 재산을 나누어 빈곤층에 나누어주는 식의 미국식 잔여 복지에 끌린다. 하향식 평준화는 아무래도 나의 추락을 방지해 줄 안전망으로 기능할 것 같기 때문에. 그러나 더 생산적인 의미의 북유럽식 복지, 즉 퇴출당해도 실직수당이 보장되어 있고 직업 교육, 그를 통한 재취업이 보장되어 있는 선순환식 복지도 흥미롭다. 언제 조직에서 나가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선택이란 것은 늘 새롭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늘 같은 방식으로 하며 살아왔다. 선택이 새롭다기 보다는 선택으로 새로워지길 바란다가 맞을 것이다. 그러니 같은 방식, 같은 생각으로 선택을 해놓고 새로워지길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선택하기 전까지 집요하게 따지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몇 년 앞이 아닌 십년 후, 이십 년 후까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아는 F 세대는 투쟁에 익숙하지 않고 누가 돌을 던지면 같이 동조하거나 아니라 생각했다면 침묵으로 고개를 돌릴 사람들이다. 고독한 독립투사보단 외롭지 않은 연대를 택할 사람들이다. 2002년의 삼십대는 이제 노란저금통의 추억으로 남았다. 십년이 지나 어느덧 중년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가 택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하나 분명한 건 그 공감대의 키워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지금 우리와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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