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800여 편 써낸 시중 60여 편 엮어내

장진기 시인이 생에 첫 시집 ‘사금파리 빛눈입자’를 발간했다. 전문가들로부터 근래 보기 드문 서정적시라는 호평이 자자한데...

 

“어머니는 나에게 시를 쓰게 하시고 떠나셨다”

서정시들 중에서도 백미… 전문가들의 호평 이어져

시인 장진기(56) 씨가 생에 첫 시집 ‘사금파리 빛눈입자’(작은숲출판사)를 펴냈다. 정택핵 시인과 정설영 시인의 시집 발간이후 영광지역에서 시집이 발간된 게 무려 15년만이다.

장 시인은 “시를 쓰게 한 어머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헌사 하고자 이번 시집을 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시에 빠지기 시작한 건 사춘기 때다. 시를 쓸 줄은 몰랐다. 친하게 지내던 누이가 읊어주는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라는 시를 듣고부터 이었을까? 그는 그저 시가 마냥 좋았다. 장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고려대 국문과에 진학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학교에 남아 계속해서 문학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창작의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의 나이 33살,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와 지내며 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장 시인은 어머니 추모제에 조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어머니 영전에 조시를 바치고 싶은 마음에 펜을 잡은 것이 그의 시인 인생의 시작이다. 그 후로 이십년이 흐른 지금, 그는 “어머니는 나에게 시를 쓰게 하시고 떠나셨다”고 말한다.

장 시인이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던 것은 30대 중반이다. 당시 영광은 영광원전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던 때다. 그는 현장에서 시를 썼다. 시는 무기였고, 투쟁이었다. 참여시에 실존이 주사된 현장 시였다. 그런 시는 반예술적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허나 풍자와 해학은 그가 시를 쓰는 요소였고, 상황에 따라 토해내는 뜨거운 입김은 그의 실존의 자각이었다.

장 시인은 1999년 ‘내일의 시’에서 신인상을, 2000년 ‘함께 가는 문학’에서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영광 작가회의 지부장과 영광 민예총 지부장을 역임했다. 지역 문학을 굳건히 일으켜 세우고자 한시도 펜을 놓지 않았다.

시와 얘기하고 시와 연애하고, 시와 동거해온 그가 그동안 써낸 시만 무려 800여 편이 넘는다. 그는 “내 시들은 허기 질대는 사냥을 하듯 들을 헤매고 세상이 시끄러울 땐 의병처럼 전투를 나가지만 돌아와서는 서정시가 되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장 시인의 시는 근래 보기드믄 서정적 작품으로, 서정시들 중에서도 백미다”고 평가한다. 특히 그의 시는 장편시가 많은 것이 특징으로, 읽는 이들의 감동을 더한다. 장 시인의 할아버지벌인 정종 선생은 눈이 어두워 귀로 듣는 이독을 하셨는데, 그가 시를 읽어드릴 때 두 번이나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장 시인은 지난 27일 동문체육대회 전야제에서 처음으로 ‘사금파리 빛눈입자’를 공개했다. 또한 후속 작업을 통해 다음 시집 발간을 검토 중에 있다고 한다. /최미선 기자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그대로 표현돼 장 시인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어깨뼈도 섬처럼 어둠에 묻힐 그리움’이다.

바다에 닿았을 때는

미치도록 엄니가 보고 싶어서

맨발로 검은 들녘을 허우적거리며 가는

어깨뼈도 섬처럼 어둠에 묻힐 그리움이 가슴팍에 차올랐다

불빛이 오락가락하는 넋 나간 선창으로

신발짝은 떠밀려가고

막내딸 여우고 못난 새끼 재금 잴 때까지는

죽어도 눈 감지 않겠다고 우리를 속였던 것이 못내 분했다

몸빼 주머니에 참기를 한 병 넣고

찜통에다 미어지게 눌러 담은 김치를 역무원이 알까봐서

다리 가랑이로 감추고 오시던 엄니처럼

바다는 넓기도 했다

기름 발라 뒤적뒤적 구워서 바늘쌈 가위로 잘라낸 김

큰 대접에다 쫙쫙 찍어놓은 수북한 김치

김이 모락거리는 밥 차려놓고

“아가 나 왔다, 어여 일어나서 밥 떠야”허는 소리가

질겅질겅 갯바위를 때리며 들어왔다

설움 설움해도 내 설움보다 큰 게 없다고

내 나이, 마늘과 참기름으로 새끼를 기르던 엄니 나이되어

엄니를 부르면서 밤바다 짠물 먹은 모래를

손가락으로 뒤집어 파면서

눈물 한 됫박 바다에 부었던 것이다

바다에 닿았을 때는 이미 나는 죽어

섬처럼 어둠에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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