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천/ 자유기고가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어버이의 마음으로 제자의 마음을 참되고 바르게 길러주는 스승.

마음의 어버이라고 불리는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스승의 날은, 1963년 전국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은사의 날을 제정하고, 1964526일 다시 국제연맹에 가입한 날을 스승의 날로 정하여 각종 행사를 거행한 것이 시초이다. 이듬해인 1965년에는 스승의 날을 515일로 바꿨는데 이 날로 지정한 이유는 한글을 창제한 우리 민족의 스승인 세종대왕의 탄신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970년대 초 정부의 서정쇄신방침에 따라 사은행사를 규제하게 되면서 한때 폐지되었지만 1982년 스승을 공경하는 풍토조성을 위해 법정기념일로 부활했다.

부활된 지 30여년이 흐른 지금, 언제부턴가 스승의 날에 깃든 그 아름다운 의미가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어 안타깝다. 초중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맘때가 되면 담임선생님을 위해 무슨 선물을 준비해야 할 지 고민한다. 심지어 어린이집, 유치원을 보내는 부모들까지 나선다. 정성어린 선물이면 된다지만 막상 스승의 날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선생님의 환심 사기에 급급한 학교 현실에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특히 내 아이만 잘 된다면 촌지도 불사하겠다는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로 인해 스승의 날의 의미는 퇴색도 모자라 변질이 돼가고 있다.

수년전 스승의 날을 앞두고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보낸 가정통신문은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학부모님도 선생님도 서로 썩 반갑지 않은 날, 스승의 날이 다가옵니다. 올해 제게 꽃이나 선물 보내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은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늘 마음이 잔잔하고 평화로운데, 여기에 어떤 파문도 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죽하면 이런 글을 학부모에게 보냈을까.

그렇다. 정성과 감사의 수준을 넘어선 촌지·선물이 이따금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주위 시선에 교사들 또한 더욱 곤혹스러워지고 사랑스럽고 화목해야할 가정의 달 5월도 소리없이 멍들어 간다.

스승이 보여주는 가르침과 제자가 갖추어야 할 존경과 고마움의 표현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진정어린 마음으로 오고 가면 되는데 그 고마움이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오고갈 때 그 의미는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 중간에 학부모가 직간접으로 개입하다 보니 스승의 날에 가장 소중하게 다뤄져야 할 스승과 제자가 느끼고 나누는 교감의 진정성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주변의 어느 학부모는 스승의 날이 왜 5월에 들어와 있는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투덜댄다. 입학한지, 또 새 학년으로 올라간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때에 선생님을 향해 보내는 감사의 표시가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겠냐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 학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나도 참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 쳤다.

스승의 날이 갖는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고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이 학부모의 뜻처럼 사제(師弟)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와 사랑을 나누는 이 자랑스러운 날을, 학기 초인 5월이 아닌 학년 말인 12월이나 2월로 옮기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학부모의 개입이 적어질 것이고 스승과 제자사이의 마음의 교감과 그 고마움의 표현 또한 지금보다는 훨씬 진정성 있고 자연스러워 질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날의 의미가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점차 변질되어가는 것을 세상의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교총이나 전교조 등에서 자발적으로 이 날을 다른 달로 옮기자고 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스승의 날이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기념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혜를 모으면 좋겠다.

스승의 날을 더 이상 곤혹스러운 날이 아니라 축제의 날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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