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님을 위한 행진곡>은 어쩌면 우리가 영원히 불러야 할 노래인지도 모른다. 설령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나 민족이 추구하는 유토피아가 현실로 도래 했다 하더라도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은 보다 나은 또 다른 세계를 위하여 다시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고 또 다른 이상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님을 위한 행진곡>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람다운 사람들이 영원히 불러야 할 참인간의 노래인 것이다.

80년 오월 광주, 시민군 소속 <민주투쟁위원회> 대변인으로서 당시의 군부에 의해 모든 언론과 소통의 수단들마저 철저히 차단된 채 무인고도와 같은 고립된 공간 속에서 시민들의 눈과 귀와 입이 되었던 <투사회보>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끝까지 도청을 사수 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산화해간 사람. 윤상원. 그에게도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전남대학교에서 강제 제적을 당한 후 전남방직에 노동자로 취업하여 노동자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며 1979년 윤상원과 함께 광주시 광천동 <들불야학>에서도 활동했던 여인, 그녀는 윤상원의 후배였고 눈빛만으로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연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불행하게도 같은 해 12월 자신의 자취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들의 못다 이룬 꿈, 못 다 이룬 사랑....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의 숭고한 사랑과 아름다운 영혼 앞에 다시 모였다. 산자로서 무언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으리라.

영혼결혼식,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8012월에 열리게 되고 그들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노래가 만들어졌다.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를 황석영이 약간 개사를 하고 가수 김종률이 곡을 붙여 역사의 현장에서 숨져 간 두 영혼의 결혼식장에서 처음으로 불리어진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를수록 슬픔의 감정으로 가슴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노래, 부를수록 가슴 저 깊은 곳의 분노가 치솟게 하는 노래, 부를수록 비장한 각오와 결연한 의지를 충전시키는 노래, 부르는 사람 모두가 저절로 뜨거운 손 붙잡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하는 노래,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부를 수 없는 노래, 어떤 관념이나 허상이 아니라 생생한 투쟁의 현장에서 피토하는 심정으로 불러야 하는 노래, 부를수록 힘이 솟고 강인한 생명력이 넘쳐나는 노래.....

그 노래가 아름다운 까닭은 한 시대의 정치적 모순과 부도덕한 권력의 억압으로부터 목숨 바쳐 일궈낸 인간 해방의 역사를,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가는 단초였으며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자들의 순결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왜 그 아름다운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가? 그리고 그 순결한 노래를 왜 마치 좌파의 전위곡인 냥 악용하는가? 폭정의 시대, 그들의 사상성 속에는 그 치졸한 좌파 의식도, 천박한 명예욕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확고한 신념, 인간 사랑의 아름다운 꿈만이 오월의 꽃잎처럼 타오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을 욕되게 하는가?

모순은 아직도 극복되어지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흔들림 없이, 흔들림 없이 아름다운 꿈을 간직한 채 새 날을 기약하며 눈부신 햇살 한줌 가슴에 안고 떨어졌던 그 꽃은 지금 다시 피어나고 있는데도 모순은 더욱 심화되고 있을 뿐이다.

과거 정치적이고 물리적이고 현상적이었던 폭압구조는 지금 보이지 않는 자본의 권력과 은밀한 밀월관계를 즐기면서 인간 의식의 가장 취약한 물질적 욕구를 충동질하며 기본 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인간 본질의 생존적 가치를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인문학을종톳이 아닌 돼지 불알 까듯 거세함으로써,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자본 권력과 정치권력을 장악한 소수집단과, 사회적 정의를 내세워 극단적 집단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먹물집단들의 위장된 정당성만을 향한 논리로 치닫고 있다.

우리의 국가인 애국가도 제대로 못 부르며, 신사참배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역사의식의 부재 앞에 k-pop은 무엇이며 한류는 또 무엇인가? 정치권의 온갖 교언영색(巧言令色)도 시민단체나 진보단체의 공허한 외침도 모두가 외형만 화려할 뿐 그 생명력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할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노래이며, 다시 그 역사적 사명과 생명의 부활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피터지게 불러야 할 노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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