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암 金井庵

동굴 안에 옹달샘이 있는데 항상 금물이 떠 있다

홍농면 가마리와 칠곡리 경계에 금정산이 있다. 산 중턱에 서면 칠산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석양이 황홀하게 아름다운 금정암이 있다. 금정암 법당에서 위로 올라가면 절벽에 상도실이 있는데, 이곳에는 천연적으로 생긴 바위동굴이 있다. 이 동굴에는 몸이 좋아진다는 약수가 있다. 이곳은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절대로 물이 마르지 않아 항상 약수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 태양에 금빛이 되어 금정이라 부르고 아래에 있는 절을 금정암이라 하였다 한다.

날이 가물면 영광고을 원님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산 밑에 가마미 해수욕장이 있다. 가마미加馬尾1627년 보명선사가 말이 해변을 향해 오는 형국이라 하여 마래馬來라 하였는데, 언재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의 꼬리가 피어나는 모양, 또는 금정산의 지형이 마치 멍에를 쓴 말의 꼬리처럼 생겼다하여 가마미(멍에 가, 말 마, 꼬리 미)라 하였다고 한다.

금정암은 인조 5(1627)에 보명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언제,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웅전, 서호정, 칠성각, 요사채 등 4동이 있으며 모두 팔작와가이다. 대웅전에서 150m 정도 떨어진 금정산의 정상 밑에는 칠성각이 있는데 정면 2, 측면 1칸의 주심포 양식의 팔작와가로 내부에는 탱화가 있다. 또한 암역내에는 서호동지회기실비가 있다. 현재는 원자력발전소로 인하여 통행이 금지되고 폐찰상태에 있다.

 

 

금정金井의 부금浮金

가마미에서 평생을 근면하고 착하게 살아온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하루는 봉우산(금정산)에 땔나무를 하러 갔다. 땔나무는 나무를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죽은 나무 가지나 산주인이 베어낸 나무뿌리를 케어 내는 고된 작업이었다. 그날은 갑자기 비가 몹시 내려 산에서 굴을 발견하고. 비를 피해 굴 안으로 들어갔다. 굴 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맑은 옹달샘이 있었다. 마치 목이 마르던 할아버지는 샘물을 흠뻑 마시고 어둑어둑해지고 비가 잦아들자 나뭇짐을 지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나뭇짐이 점점 무거워져, 빗물이 나무에 젖어들어 그런가 하고 나뭇짐을 덜어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는 일어나면서 배를 만지자 뒷문으로 작은 금이 나오고, 방을 나와 어제해온 나무짐을 살펴보니 아! 이게 무슨일인가 ! 땔감으로 쓸 나무짐이 모두 금으로 되어있지 않는가! 그리고 어제 오는 길에 무거워 덜어 논 나무들도 모두 금으로 변해 있었다. 금 덕택에 노부부는 부자가 되었다.

이들에게는 장가들어 한양에 사는 아들이 있었는데, 노부부가 부자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몇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오지 않던 아들과 며느리가 선물을 싸들고 찾아왔다. 그런데 부모가 사는 모습은 예나 다름없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실망한 아들은

부자가 됐다더니 이게 무슨 꼴이요?”

사는 모습이 어쨌단 말이냐! 다 이렇게 사는 거지.”

금 팔아 부자가 됐다던데 돈은 다 어디에 두었소?”

집에 오자말자 아부지, 엄니는 뵈지 않고 돈이 보고 싶어?”

……

할 말을 잃은 아들을 보며 할아버지는 그동안의 일들을 알려주고 금 판돈은 지나는 스님에게 금정산에 절을 짓는데 사용하라고 주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한번 배를 만지면 작은 금덩이가 나온다고 하면서 아들에게 작은 금덩이 하나를 주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못한 아들은 더 많은 금을 꺼내려고 할아버지의 배를 깊이 누르고 눌렀다. 그러자 금은 나오지 않고 할아버지는 죽고 말았다. 할머니는 매우 슬퍼하였다.

금에 눈이 뒤집힌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처럼 지개를 메고 산에 올라 바위동굴로 들어갔다. 옹달샘위에 또 하나의 작은 옹달샘이 있는데 금물이 떠있었다. 이들은 그 금물을 뜨려고 손을 넣으면 누런 금물은 확 퍼져버려 뜰 수가 없었다. 흥분한 이들은 얼굴을 옹달샘에 넣고 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금색이 된 얼굴로 산에서 내려오던 그들은 몸이 점점 무거워지면서 고체가 되어 절벽에서 떨어져 조각나고 말았다. 지금도 금정암의 금물은 아무도 뜨지 못한다고 전한다.

 

 

대절산 화미火米

대절사에 상승과 하승이 거주하였는데 절에 손님이 오면 손님이 온 만큼 밖에 쌀이 나오지 않아 욕심 많은 하승이 부지깽이로 쌀 구멍을 헤친 뒤부터 탄 쌀이 나와 하승은 쌀 구멍을 깨끗이 청소하고 예전처럼 쌀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았다.”

대절산(대모산大母山 대절산 죽사산竹寺山)은 백수읍 죽사리와 천마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221m이다. 이곳에 백운암이라고 하였던 대절사가 있었는데, 이 절터 뒤에 석간수가 나오는 구멍에서 불에 탄 쌀이 나와 이를 대절산 화미火米라 하여 영광팔괴의 하나로 유명했다. 이러한 화미를 연안김씨 정(1793 ~ 1867)은 괴이한 일이 아니라 자연현상이거나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자신이 쓴 골동설汨董說, 1856에 이렇게 적었다.

이 전설을 통해 이곳에 성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산성의 곡식창고가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후 일부 화미가 나온 것이 전설화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예부터 바위는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된다. 성기석性器石에 기자祈子하는 행위나 큰 바위에 기도하는 행위는 바위가 지닌 생명성과 생산성을 전제로 한 행위들이다. 여기서 쌀 나오는 바위굴 전설에 담긴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전남지역의 바위전설 중 가장 흔하게 전승되는 전설이 쌀 나오는 바위굴 전설인데, 일반적으로 쌀 나오는 바위 전설의 경우, 게으른 중이 욕심을 부려 쌀이 더 나오도록 부지깽이로 쑤석거림으로서 바위의 생명성이 파괴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쌀 대신 불이 나오거나 탄 쌀이 나옴으로써 인간의 욕심이 결국 일을 망친다는 교훈을 준다. 중의 욕심이 자연의 생명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불과 같은 재앙을 가져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백수읍 죽사리 대절사 탄 쌀이 나오는 바위 전설은 일반적으로 중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재앙을 가져온 것으로 이해하고 만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곳의 이야기를 구성한 의미를 이해해야 하고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고 또 어떤 행위가 계속해서 특정한 가치로 인지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화미의 단어에 내포된 반영은 서로를 지시하고 암시한다. 전설은 이런 식의 전환 과정 속에서 인지된다. 쌀이라는 생명을 손님맞이 재물의 상징으로 전환시키려는 스님의 노력이나, 이를 부지깽이의 힘으로 변환시키려는 시도는 재물을 둘러싼 암묵적인 어떤 사실을 보여 준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쌀은 매우 중요한 가치로 쌀에 대한 정의를 두고 펼쳐진 이야기이다. 또한 상승과 하승으로 구분되는 승려사회의 계급과, 사찰경제가 어려우면 하승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보시를 강조하고 결국 쌀의 중요성이 전설의 이면에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철마산의 철마 鐵馬

불갑면 건무산建武山과 우곡리에 걸쳐있는 해발 240m 높이의 신선이 사는 듯한 모습의 산이 철마산이다. 어느 날 나무꾼들이 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산 정상에 올랐는데, 봉우리에 뭔가 있었다. “여보게 저게 뭐지?” “글세……어른 주먹크기보다 큰 묵직한 철마였다. 나뭇꾼들은 기이하고 신기하여 서로 갖고자 싸웠다.

이 사람아! 내가 먼저 발견하였으니 내꺼야!” “내가 먼저 손에 넣었으니 내꺼지.” “허참!”

자네가 가져가게!”

그렇게 다투다가 손에 넣은 나뭇꾼은 집으로 철마를 가져와 농짝 속에 넣어두고 다음날 열어 보았는데 사라져 버렸다. ‘거참! 이상하네. 이웃 놈이 훔쳐갔나?

친구를 의심하던 나뭇꾼은 또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정상에 올라가 보니 사라진 철마가 그 자리에 있었다. ‘허참!’ 그는 다시 철마를 가져다가 농속에 넣고 이번엔 자물쇠를 채워 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밤사이에 도로 제자리로 가버렸다. 괴상하게 생각한 이 사람은 처음 발견한 나뭇꾼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자네가 가져다 두어보게하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지쳐버린 이들은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산 이름을 철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철마는 일제 때 일본인이 훔쳐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백초섬白草의 나각螺殼

염산면 야월리에 백초라는 섬이 있었는데 그 섬에는 많은 조개나 굴 껍질이 쌓여 있었고 그것이 어느 날 불에 타서 회가 되었다. 재가 된 회가루로 소금을 굽는 항아리 등을 만들기 때문에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큰 배를 대고 퍼가고 퍼가도 백초섬의 회무더기는 잠깐 동안에 전과 같이 쌓인다는 것이다.

 

 

야월리의 음양수陰陽水

염산면 야월리 앞에는 조수가 들고날 때 한편은 맑은 물이, 한편은 탁한 물이 흐르고 있는데, 옛 사람들이 이곳을 보고 마치 사람의 현우賢愚를 분간한 것 같다’ “천하만물의 이치는 저 조수와 같다고 하여 음양수라 하였다.

 

 

태청산의 부석浮石

딸각바위로 불리는 이 부석은 대마면 남산 동남쪽에 있는 태청산 상봉에 있다. 큰바위 위에 또 다른 바위가 얹어 있는데 새가 앉거나 사람이 그 위에 올라서면 딸깍하는 소리가 나는데 또 다시 밟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또한 이 돌 틈으로 긴 밧줄을 넣으면 걸리지 않고 나오며 줄로 묶어 잡아당기면 움직이지만 사람이 손으로 밀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남산을 바라보는 이 부석이 딸깍 소리를 낼 때마다 남산촌에서는 인물이 난다고 전해 내려온다.

 

 

풍사風沙

봉산奉山면 세호細湖는 지금의 백수읍 하사리를 말한다. 그 세호리 바닷가에는 세모래가 산을 이루고 있는데 유난히 바닷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어서 그 모래가 바람에 날아가지만 그 쌓여있음은 항상 전과 똑같이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칠산도의 부도浮島 칠산바다에 떠있는 섬

낙월면 송이도에는 칠산도라는 일곱 개의 섬이 있는데 여섯 개의 섬은 간만干滿에 따라 수위가 달라지지만 그 중 한 섬은 유독 작아서 조수가 들면 완전히 묻혀버릴 것 같은데도 그렇지 않고 만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떠있는 섬이라하여 부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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