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생의 폭풍우 속에서 자신을 점화하여 창조의 높은 자리에 우뚝 선 이들의 몇가지 이야기를 하려한다. 재능이란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의 재능은 타고난다. 그것이 세상의 밝은 빛이 되기 위해서는 불씨를 찾아내어 불꽃을 일구고 기름을 부어줘야 한다. 땅속에 아무리 값진 금광석이 묻혀 있더라도 캐내어 제련하지 않으면 흔한 돌산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천재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재능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다. 자기 자신을 믿으며, 외롭고 고독한 방황과 방랑 속에서 마침내 스스로 위대한 불꽃이 된 사람들이다. 불운과 결핍이라는 생의 악조건들을 위대함으로 돌려세운 이들이 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그러한 요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다. 지식이나 지혜도 그것을 막지는 못한다. 반갑지 않은 불청객은 우리가 먼저 그 자리를 벗어나기 전까지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을 단련시키는 교사로 삼는다면 오히려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영원할 것 같은 행복이 한계가 있는 것처럼 불행도 한계가 있다. 멈추지 않는 바람은 없고, 끝없이 내려가는 골짜기는 없다. 장애나 가난을 실패의 원인으로 돌리면 안 된다. 부족함이 욕망을 부르고 욕망이 창조를 부른다. 모두 불행과 불운과 결핍 같은 것들을 자신을 단련시키는 교사로 삼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프랑스 귀족의 아들 로트레크는 몸이 약한데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로 평생을 불편하게 지냈던 화가다.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던 소년은 그림 속에서 자유와 즐거움을 찾았다. 굳이 남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었으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갔다. 그에게 콤플렉스는 약점이 아니라 남이 지니지 못한 장점이었다. 파리의 화려한 유흥가 몽파르나스 거리는 더없이 좋은 미술 소재의 보물창고였다. 위선으로 치장하지 않은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남보다 짧은 다리로 그는 사교계와 미술계를 동시에 주름잡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운을 미워하지도,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대단한 화가이기 이전에 위대한 인간이었다.

미국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맨발의 무용가 덩컨은 숲속과 해변을 뛰어다니며 자랐다. 바람과 파도 소리는 최고의 음악이었다. 공식에 따르지 않는 독창성이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가난은 주관적인 삶을 살게 한 고마운 은인이었다. 꿈을 찾는 도전은 국경과 사상을 뛰어넘었다. 관객들은 마침내 고대 그리스에서 온 것 같은 무용수를 향해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수입은 많았으나 축적에는 관심이 없었다. 재산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무용학교를 세우고 싶었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춤을 춘 그녀의 이름은 인류의 기억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문학인 아버지를 둔 영국의 여성 작가 울프는 남모를 상처를 안고 자랐다. 소녀 시절에 아버지가 다른 오빠들에게 당한 수치심은 평생 동안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거기에다 잇따른 가족의 불행은 그녀를 심한 신경쇠약으로 몰고 갔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글이었고, 일기 속에 참을 수 없는 마음의 통증을 쏟아냈다. 그녀는 희망을 믿었다. 케임브리지 청년들의 모임인 블룸즈버리 그룹에 나가 세상의 진선미를 탐구했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글을 가지고 부조리한 세상과 싸워나가기로 했다. 소설은 자신과 타인의 성하지 않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가장 따뜻한 친구였다. 그녀는 불행을 이유로 생을 던져두는 겁쟁이도 게으름뱅이도 아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술가 워홀은 병약해서 방 안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라디오를 들으며 색칠 공부를 하고 인기 배우들의 사진을 모으던 일은 자기만의 개성을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유명해지고 싶었고, 특별해지고 싶었다. 무작정 뉴욕으로 간 청년은 바퀴벌레와 함께 지내면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을 거라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친근한 소재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깡통과 콜라병과 마릴린이 예술로 탄생했다. 스튜디오는 팩토리였고, 조수들은 예술 노동자였으며, 자신은 사업 예술가였다. 그는 꿈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는 실천가였다.

영국의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태어나고 자란 4명의 소년이 비틀스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를 잃은 아이, 빈민가 출신의 아이들, 걷기 전에 뛰어야 했던 아이들이었다. 단 한 번도 남들처럼 따뜻한 가정에서 지낸 일이 없는 소년들에게 음악은 둘도 없는 위안이었다. 그들은 담배 연기와 맥주 냄새로 찌든 부둣가 클럽에서 수도 없이 연주했다. 모두들 기타로는 먹고 살기 힘들 거라고 했다. 그러나 소년들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창조자들이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든 음악들은 마침내 세계를 감동시켰으며, 그 감동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할 것이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최고의 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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