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천/ 자유기고가

공자의 제자 자공이 올바른 다스림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간결하게 세 가지를 말했다.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었다. 족식은 정치가 잘되어 국민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족병은 군사를 충실히 갖추어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켜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이며, 민신은 국민들이 정치와 정부를 믿는 일이다.

그런데 이 셋 중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켜야할 것이 무어냐고 또 자공이 물었다. 공자는 󰡐믿음󰡑이라 했다. 그러니 경제문제, 안보문제, 정부에 대한 신뢰문제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신뢰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처럼 고래(古來)의 사서(史書)나 경전(經典)이 우리에게 주는 숱한 교훈 가운데 참된 지도력이라는 것은 교묘한 말솜씨나 혹은 위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덕()에서 나온다는 가르침이다.

요즘은 실로 국정원 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에 기간 국가 정보기관이 '치졸한' 그러나 소름 끼치는 방법으로 불법 개입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고, 대선 표심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한 사건에도, "댓글의 흔적이 없었다"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경찰 당국의 뻔뻔함이 온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지난 4, 경찰의 수사 은폐, 축소 의혹에 대해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용기를 내어 윗선의 지시를 양심 고백한 내부고발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국정원과 같은 국가 조직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이, 위기에 처한 국정원은 'NNL' 카드를 들고 나와 세상에 까발림으로써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다. 대통령은 국정원 "셀프 개혁"이란 어이없는 처방을 내렸고, 여당은 갖가지 꼼수를 이유로 국정원 선거개입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시작된 국정조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런데, 아뿔사! 이제 국가기록원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증발되었다니...아예 사라졌는지, 아직 못찾았는지는 모르는 일이나 본말이 전도된 채 소모적인 정쟁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짙어진다. 그리되어선 안되겠지만 결국, 지금의 제도정치권 안에서는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실망과 분노가 더 많은 국민을 광장으로 이끌 것이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국정원이 납치한 민주주의를 되찾겠다는 외침에 대통령은 국민 앞에 나서서 용기있게 답해야 한다. ‘국가 정보기관의 부끄러운 선거개입에 대해 사과하고, ‘국정원장을 해임하며 다시 새 출발하겠다고 말이다.

참다운 힘은 국민의 믿음에서 나오고,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정치와 정부만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을 통해 지난 대선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수혜를 입었던 대통령과 여당에게 지금의 NLL관련 사초의 실종은 언뜻 호재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임기 5, 국민을 위해 뛰어야 할 앞길이 구만리인 대통령에게 정쟁으로 흘려버린 금쪽같은 5개월은 실로 아까운 시간들이었으며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얼마나 공전(空轉)할지 모른다는 게 더 절망적이다. 이러한 실망과 분노는 결국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치환된다.

더 늦기 전에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어 놓고 뻔뻔하게 나 몰라라 하는 이들을 엄히 문책하고 처벌하면서 극도로 문란해진 국가기강을 바로 세운다면 희미해진 믿음을 회복할 수 있다. 국민의 믿음에 기반을 둔 정부가 될 때 현 정부의 국정운영도 탄력을 받고 순항할 것이다.

국기문란의 최대수혜자인면서도 정쟁의 추이를 뒤에서 훔쳐(?)보며 달콤한 결실만을 취하려는 듯한 지도자를 국민은 결코 신뢰할 수 없고 그 권력 또한 지지할 수 없다.

민신(民信) 회복을 위해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는 대통령의 용기있는 모습을 하루 속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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