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세기말은 언제나 우울과 고독, 방황, 번뇌, 절망으로 점철된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유신 독재가 극에 달했던 1970년대 말에서부터 군부가 종식되기 직전인 1980년대 후반까지 조금 일찍 시작된 우리의 세기말 현상은 당시 한창 젊음의 피가 끓던 7080 세대들에게 있어서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맞이한 세기말은 그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유럽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Mēlancolie(멜랑콜리:우울 침울 우수 애수)로 대변되는 염세적이고 퇴페적인 사회풍조에 의해 Realism(리얼리즘:현실참여)에 반기를 들고 허무, 퇴폐, 탐미주으로 전락했던 유럽의 그 것과는 달리 우리의 젊은이들은 그 절망과 나락 속에서 오히려 자아 성찰의 기회를 자각해내고 보다 적극적으로 그 절망을 뛰어넘으려고 대처 한 결과 그 질긴 군부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라는 역사적 정당성을 담보해낸 것이다.

 

 

-1억 조기떼 군단의 대 합창-

기껏해야 돌아오지 않는 조기 파시(波市)를 기다리며/고개 떨군 낡은 어선들만 정박해있는 법성포/사랑의 약이 오를대로 오른 노란 참조기의 몸빛/결코 옳은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빛나는/굴비(屈非)의 맹서는 어디가고 비굴(卑屈)한 타협처럼 추한,/원전의 돔처럼 을씨년스런 내 젊음의 산란장/갯바닥에서 일어나는 뻘물로 검푸른 파도 너머/한 아비를 영영 떠나보내야만 했던 죽음의 연안/그러기에 갯바위 같은 슬픔 덩이를 때리며/다가와 거듭 회한의 물거품으로 스러지는/그러나 누룽지 식은밥만 먹고도 젖을 내/산아제한 없이 난 열자식쯤 너끈히 키워낸 어미 같이,/어김없이 뻘밭 고랑에 맑은 생명이 물줄기 다스리며/얼마큼 자란 치어들을 먼 바다로 배웅하며/오래 빈 조개 껍질에 귀 대고 서있는 모성(母性)의귀항지/철쭉꽃 필무렵이면 알맞게 간이 든 조기살과/꽉찬 조기 알로 귀천(貴賤)없이 나라 안 백성 배불리며/제법 흥성거렸을 법한 그리운 살내음의 출항지/먼 옛날 효녀 심청을 삼켜 연꽃으로 피워낸 바다/그래서 끝내 빼앗길 수 없는 상속의 포구-임동확 시 칠산바다 전문-

시대의 양심으로서, 억압받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피끓는 젊음으로서 당시의 절망적 상황일 수 밖에 없는 을씨년스런 내 젊음의 산란장인 세상의 바다에서 방황하던 청춘은 누룽지나 식은밥만 먹고도 산아제한 없이 열자식쯤 너끈히 키워낸 어미 같은 칠산바다의 끈질긴 생명력을 통해서 새 희망을 찾은 것이다. 칠산바다에서 울려퍼지는 조기떼 군단의 생명에 겨운 합창을 들으며 그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할 까닭은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부세(大黃魚)들의 노래-

그렇듯 곡우철을 전후하여 조기떼가 요란을 떨며 칠산바다에 생명의 씨를 뿌리고 나면 곧바로 하지를 전후해서 황금빛 노란 부세 떼가 찾아와 똑같은 곡조로 대규모 해저 오케스트라를 구성한다. 그러나 그 유명했던 부세떼는 남획으로 인해 더 이상 칠산바다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며, 세계적으로도 개체수가 얼마 되지 않아 국제 자연보호 연맹에서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해놓은 상태다. 과거 우리나라 부세잡이의 최고 어장지는 백수 앞바다인 속칭 포내미골이었다.

 

 

-삼복더위의 진객(珍客) 민어들의 사랑놀이-

어느덧 보리베기, 모내기가 끝나고 계절이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면 다시 칠산바다에는 삼복더위의 진객이라 할 수 있는 민어떼들이 입성하여 그 장엄한 사랑의 대 합창을 하게 되는데 이 때쯤 칠산바다 해저에서는 온통 민어들의 구애활동을 위한 노래소리가 마치 봄날 저녁 논바닥에서 밤새도록노래하는 엉머구리(개구리)소리처럼 바글바글 끓는다.

민어는 농어목 민어과의 어종으로 보통 수심 40-120에서 서식하는데 산란기가 되면 그 가장 적합한 장소인 칠산바다를 찿게 된다. 통상적으로 칠산바다라 함은 신안군 임자도에서 전라북도 위도까지를 말하는데 그 중심이 영광 앞바다이고 민어잡이의 주 어장은 신안군 임자도와 영광군에 속해있는 낙월도, 납덕도, 송이도, 소노인도, 대노인도, 칠산도, 안마도 주변에서 형성되며 그 위로 북상을 하면 더 이상 잡히질 않는다.

비닐 외에 내장부터 껍질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민어는 예로부터 여름철 보양식으로 각광을 받았는데 산란 직전인 초복부터 말복 사이가 가장 맛이 좋고 여름철 최고의 복달임음식으로 치기 때문에 금년같은 경우 초복을 전후해서는 그가격이 1kg9만원을 홋가하기도 했다. 성어 한 마리가 평균 6kg에서 크게는 20kg이 넘기도 하니 큰 놈 두 마리만 잡아도 100만원이 넘는 셈이다.

지금 칠산바다에는 민어잡이가 한창이다. 영광의 어선뿐만 아니라 신안 목포 여수배들까지 올라와서 민어잡이 경쟁을 하고 있어 생생한 삶의 활력이 넘쳐나고 있다.

어둡고 앞이 보이지 않았던 시절, 젊은 시인이 칠산바다의 끈질긴 생명력을 통해서 절망을 뛰어넘어 새 희망을 노래 했듯이 오늘도 칠산바다는 변함없는 일렁임으로 그 무한한 생명력을 토해내고 있으며, 우리들에게 내일을 향한 생명과 희망의 메시지를 영원한 시원(始原)의 울림으로 끊임없이 전해주고 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