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한 해가 저문다. 밝은 소식으로 한 해 마지막 칼럼을 장식하고 싶었다. 그런데 역시나 시절이 순탄치 않다. 국민들도 안녕하지 않다. 1년 전 우리의 잘못된 선택 탓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 5년으로도 모자라 현 정부에서도 애꿎은 민초들이 또 당하고 있다. 얼마 전 한 대학생이 남긴 진솔한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는 이유다. 2007년 대선, 우리는 전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줄 듯 한 이명박 후보에게 기대를 걸었다 마침내 쪽박을 찼다. 이명박 정부 5년간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2.9%로 참여정부 때의 평균 성장률 4.3%보다 크게 낮았다. 이명박 5년간의 수출증가율은 47%로 참여정부 때 12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부자는커녕 쌓아 온 민주주의조차 무너뜨렸다. 그렇다면 현 박근혜 정부는 다를 것인가. 과연 대선 때 공약했던 ‘100% 대한민국시대는 올 것인가.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는 계속 기대해도 좋은가. 그 화려했던 약속들은 정녕 안녕한 것인가. 현재로선 미몽에 불과하다. 올 해 일 년 당해보니, 미래가 수상할 뿐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5위 경제대국이고 무역규모는 세계 10위 이내이다. 그런데 절대빈곤율 8%, 상대빈곤율 16.5%OECD 국가들 중 최고의 빈곤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GDP 대비 공적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이 10%에 불과한 탓이다. OECD 평균인 21%의 절반에도 못 되는 한심한 수준의 복지후진국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10년 사이에 자살률은 2.3배나 늘어 OECD 평균의 3배나 된다. 작년 한 해 15천여 명이 자살했다는 얘기다. 강력범죄율도 87%나 늘었다.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기 어렵다. 중장년층도 일자리 불안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살기가 힘드니,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는다. 합계출산율은 1.3에 불과하여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 모든 통계가 말해 주듯이 우리국민들은 전혀 안녕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국민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 국가 중에서 32위로 꼴찌 수준이다. 한마디로 파국적 현실이다. 그 어떤 통계에도 이제는 무덤덤해진다. 그 어떤 소동과 소식에도 무감각해진다. 연탄불을 피워놓고 동반자살한 노부부 뉴스를 보고서도 그렇다.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등에 업어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중년엄마의 자살 소식을 듣고서도 그렇다. 학교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옥상에서 뛰어내린 고등학생, 해고로 인해 24명 째 자살을 선택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송전탑 반대투쟁 중에 분노를 품고 죽어간 농민들........그 비통한 죽음들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도무지 감당할 여력이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누구 탓이란 말인가. 시장만능의 경제체제와 선별적 복지 중심의 허약한 복지체제 탓이다. 시장과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국가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좋은세상, 착한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지속적인 생산력 발전의 기반을 구축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대국 아닌가. 전 세계 통틀어 15위의 경제대국에서 과연 빈곤과 자살과 실업으로 이토록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고통이 이어지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말이다. 1997년 구제금융 때, 전 국민이 힘을 보탰다. 돌반지까지 갖다가 국가에 바쳤다. 언젠가 국가가 보답할 줄 믿었다. 내 가정에 위기가 오면, 국가가 돌봐 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민주주의 없이 경제발전 없는 법인데, 민주주의도 무너졌고 경제도 도탄에 빠졌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허망한 말 같지만, 견디고 버티며 살아야 한다. 쌩뚱맞은 결론이지만, 다시 민주주의를 키우고 서로 돕는 경제를 이뤄가야 한다. 대안없는 관념이지만, 국가의 파탄과 정치의 실종 아래에서도 다시 희망을 설계해야 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돌아보고, 고통 속에서 절망하는 현장을 살펴가자. 가슴 속에는 분노를 품되, 손발에는 사랑을 담아 마을 안에서 나직하게 연대하자. 어려울수록 가난 그 자체를 나누고 어울려야 절망을 넘어설 수 있다. 가난한 곳간이지만 쌀 한 포라도 이웃에 내어주어 우리가 우리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밀양의 동료들에게, 강정마을의 주민들에게, 코레일의 파업현장에도 눈길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저 무도한 권력을 비웃어줘야 한다. 민초들의 연대가 얼마나 큰 진짜 권력인지 확인시켜야 한다. 사랑은 나직하게, 정의는 꾸준하게! 그러면 새로운 희망이 싹트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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