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사회복지학박사)

호감 가는 칭찬과 가식적인 칭찬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칭찬에 인색하고 또한 어색하다. 언듯 던진 칭찬에 여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넘쳐나게 하는 경우도 있고, 생각해서 해준 칭찬이지만 괜히 이상한 사람 쳐다보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칭찬은 할려면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한 후에 구체적인 칭찬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칭찬에 성의가 느껴지고 상대방도 진심으로 받아드리기 때문이다.

뭐든지 지나치면 안 한 것만 못하다. "눈이 너무 예뻐요", "몸매가 아름답네요", "목소리가 너무 상큼하네요" 이렇게 연속적인 남발은 사람을 가벼워보일게 할뿐만 아니라 아무리 진심어린 마음에 표현한 것이라도 가식적으로 밖에 보일수가 없다. 이 녀석이 나한테 수작부리는 건가(?) 라는 오해를 하기에 정말 안성맞춤이다. 아무리 완벽한 미인이더라도 연속적인 칭찬은 혀를 깨물며 자제하자.

칭찬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표현에 적용된다. 무엇인가 바라는 마음에서 칭찬을 하지말자. 점수를 따보려고, 아님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대한다면 절대 통하지 않는다. 똑같은 단어에서도 감정표현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외외로 많은 사람들이 외면보다 내면의 칭찬을 갈구한다. 특히나 미인일 경우 더 그렇다. 이미 외모적인 칭찬을 많이 들어봐서 식상해한다. 하지만 자신이 평소의 매력포인트라 생각하던 사소한 습관이나 사고방식등을 우연히 상대방의 칭찬으로 듣게 될 때 기분과 호감이 2배 업그레이 될 것이다. 이성에게 가장 이상적인 칭찬은 "손가락이 참 예쁘네요, 저는 손가락 예쁜 여자가 정말 좋던데.."처럼 자신의 "칭찬 + 호감" 의 공식이다.

서양 표현 중에 “Opposite attract, and then attack.”이란 말이 있다. 처음에는 반대적 성향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같이 살다보면, 그것이 오히려 불편해 지고, 그것을 공격하게 된다는 말이다. “다름 때문에 좋아하고, 다름 때문에 싫어하게 된다는 말이다. 내가 공격하고 있는 대부분은 내가 좋아하던 것이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조그만 태도가 인생을 바꾸는 것이다. 여러 다른 것들을 즐기라. 이국적인 것을 즐기려고 여행을 떠나지 않는가? 계속 나와 같은 것을 보는 것만큼 지루한 것은 없다.

좋은 공동체는 다름을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곳이다. 반면에 아쉬운 공동체다름을 공격의 대상으로 여긴다. 이것이 율법적 태도이다. 다름이 매력으로 드러나는 것은 주도권을 누가 행사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친밀한 관계는 여성적 요소가 강한 사람이 주도할 때 쉽게 이루어진다. 여성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법을 일찍부터 배워왔다. ?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유가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말을 많이 하던가, 울던가, 아니면 어떤 방식이든 스트레스를 푸는 일에 탁월하다. 여자는 아프다, 힘들다고 항상 외치고 다녀도 남자보다 오래 산다. 장수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에 남성은 사냥과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고도의 긴장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왔다. ? 긴장을 풀면, 곧장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에 비해서 오래 긴장해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관계를 풀어주는 역할은 여성이 주도권을 잡는 것이 좋다. 진정한 여성미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곧 따뜻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여자의 인성이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여성만의 탁월성이다. 이런 따뜻함을 만들어주는 여성적 리더십이 그립다. 남자에게는 자존심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남자는 자존심 그 자체라고 한다. 사실 실리에는 별로 밝지 않고, 자존심을 세워주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곤 하는 것이 남자이다. 남자는 존중 받는다는 느낌과 위로해 주는 쪽으로 몸과 마음이 가게 되어 있다. 존중과 좋은 위로가 있으면 사람이 몰려든다. 그래서 정중한 언어생활이 중요하다. 젊은 커플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야, 밥먹어그러다가 나아가 들면, “자기야가 빠지고 밥먹어만 남는다. 말투조차 퉁명스러워진다. 남자는 상처입는다. 믿음 좋은 여자가 남편의 잘못을 보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외친다. 남자는 졸지에 사탄이 된 것이다.

아내가 남편의 전화번호를 웬수라고 저장한 것을 보고 괴로움에 몸을 떠는 남자를 보았다. 이런 행동은 장난이라도 악한 것이다. “못 박아줘라고 말하지 말고, “당신의 손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라. 만약 안해주고, 딴청부리더라도, “그래, 네가 언제 이런 것 해줬냐, 내가 하고 말지.”라고 말하지 말라. “아야!”하고 다친 척해라. 웃으면서 도와줄 것이다.

성경에서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순종했다고 한다.(벧전3:6) 이것은 굴종이 아니라 지혜이다. 식상한 이야기이지만, 왕으로 대접해 주면, 여자는 왕비가 되는 것이다.

투쟁하며 살지말고, 아름답게 살라.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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