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지난 5년여 세월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고 고통스럽지만 고별인사 드립니다. 영광 공동체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헤어지지 않는 만남은 없다. 약속 가운데 지킬 수 없는 약속이 헤어지지 말자는 약속이다.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다. 생명이 유한(有限)해서다. 이별은 고통스럽다. 슬프다. 아쉽다. 불교는 이별의 고통도 무상(無常)으로 풀어낸다. 유교경(遺敎經)에서는 세상은 무상하니 만나면 헤어짐이 있다(皆世無常 會必有離)’고 설파한다. 법화경은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위로한다. ‘만나면 헤어지고 떠나면 반드시 돌아온다(會者定離 去者必返)’.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한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지금 영광신문에 실을 마지막 칼럼을 쓰고 있다. 서툴고 짧은 글 솜씨다. 그래서 늘 부끄럽고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셨다. 밥을 사주며 격려해주신 분들도 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썼다는 항의도, 엉터리라는 비난도 받았다.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이 글을 다 쓰면 영광신문 독자들과 헤어진다. 여느 헤어짐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럽다. 슬프다. 아쉽다.

기자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퇴직 후에도 자신을 언론인이라고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실은 백수일지라도. 나도 마찬가지다. 언론인으로서 사회에 조금이라도 공헌하는 사람이고자 지난 5년여 세월 영광신문에 칼럼을 썼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최선을 다했다. 내 고향 영광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길 바랐다. 갈등이 없는 땅, 풍요한 고을이 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다. 나름대로 그 길을 찾으려 애썼다.

50여년 만에 돌아온 고향은 옛 모습이 아니다. 집도, 길도, 사람도, 의식도. 이 나라 어디나 처럼 엄청나게 변했다. 인구는 반 이하로 줄었으나 길과 집, 자동차는 엄청나게 늘었다. 모두 다 알고 살았는데 이젠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어른들 말씀이 법이었는데 이젠 아니다. 인간 중심 사회가 경제 중심 사회로 변했다. 덕망은 존경의 대상에서 멀어지고 돈이 선망의 대상이 돼버렸다. 이웃은 사라지고 정치와 경제가 친·불친의 매개체가 됐다.

나는 우리를 찾는 영광을 소망했다. 법이나 돈이 아닌, 터줏대감이 호령하는 영광을 그렸다. 어른을 모시는 동네가 되길 바랐다. 이웃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찾았다. 시대에 뒤떨어진 멍청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라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내 고향 영광이 이해에 얽힌 이익사회(게셀샤프트)가 아니라 애정이 가득한 공동사회(게마이인샤프트)로 발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상은 경제가 지배하는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바뀌지 않는다. 바꿀 수도 없다. 그래도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사회가 되려면 공동체 의식을 갖는 사회적 운동이 절실하다. 지금처럼 이웃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살아간다면 나도 이웃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서로 기대고 사는 형상을 문자화 한 것이 한문 사람 인()자다. 나만을 생각하고 사는 것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서로 기대지 않으니 쓰러질 수 있다. 서로 기대며 살아 보자.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줄어든다. 더 행복한 우리, 영광이 될 것이다. 더 따뜻할 것이다.

지지하는 정치인이 다르다고 외면하지 말자. 돈이 없다고 멀리하고 멸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때문에 이웃이, 지역사회가 불편해 하는지 돌아보며 살았으면 좋겠다. 공동체의 편익을 위해서라면 내 땅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영광이 되길 빈다. ‘보다는 영광이란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행복한 영광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간 영광신문을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린다. 아울러 행복한 영광 만들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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