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외모(4)-키르케고르, 칸트, 김시습 외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교수/ 철학박사

지난 호에서 추남의 대표주자격인 소크라테스에 대해 알아보았거니와, 이번 호에는 코펜하겐(덴마크)의 소크라테스라 불리는 키르케고르에 대해서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오랜 동안의 집필활동에 지친 키르케고르는 농촌의 목사가 되어 조용한 생활을 하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때, 삼류 풍자 신문 <코르사르>의 편집장이 키르케고르의 작품과 인물에 대하여 오해에 찬 비평을 실었다. 이로 인하여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시작되었는데, 편집장은 키르케고르를 거리의 소크라테스라 조롱하며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허리가 기형적으로 휘고, 머리가 크고 더벅머리(더부룩하게 난 머리털)인 그의 외모를 빗댄 풍자만화까지 곁들여서. 이로써 일반 시민들은 키르케고르라고 하면 타락한 부랑아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키르케고르는 세상 사람들의 조롱이나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이 일을 기회로 삼아 다시 저술활동에 전념하게 되었으되, 대중을 혐오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가 아닐까 여겨진다.

다음으로는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의 이야기이다. 16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키에 왜소한 체격, 기형적인 가슴을 가진 허약한 체질, 왼쪽 어깨는 올라가고 오른쪽 어깨는 뒤로 굽어 마치 코르크(공기나 액체가 새지 않아 보통 병마개로 쓰임) 마개를 열 때 쓰는 병따개 같이 보이는 사람, 더구나 머리가 커서 가분수처럼 보이는 칸트가 어떻게 철학자의 상징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 자신이 스스로 세운 규칙을 고수하면서 건강을 유지함으로써 필생의 과업을 위하여 한 결 같이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나무랄 데 없는 건강을 누리면서, 당시 독일인의 평균 수명을 두 배나 뛰어넘는 80세까지 장수하였다. 이렇게 보면, 칸트야말로 철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은 거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로까지 결정되었던(본인이 수상을 거부) 문학가 사르트르는 작은 키에 사팔뜨기였다. 그러나 탁월한 유머와 코믹 센스 등으로 사람들을 곧잘 웃겼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 의도를 잘 파악하였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단편소설집 <금오신화>를 쓴 소설가이자 방랑의 천재시인이고 생육신(生六臣-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은 사육신에 대비하여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았지만,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던 여섯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인 김시습은 그 키가 작고 얼굴도 못생긴 데다, 도통 예의조차 차리지 않았다. 그러나 재기(才氣)가 넘치는 데다 독선적인 구석까지 있어서 남의 허물이나 불의의 장면을 보면 참지 못했다고 한다.

이왕 키 말이 나왔으니 한 사람을 더 소개하자면, 바로 전봉준이다. 그는 전북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와 가렴주구로 촉발된 동학 농민운동의 지도자였다. 그런 그가 녹두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나중에 녹두장군이 된 까닭은 그의 키가 유난히 작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영웅호걸 가운데에도 키가 작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한다. 나폴레옹도 그렇고 히틀러도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키가 작다는 사실이 크게 흠이 되거나 약점이 되는 것은 아닐 터. 더욱이 시대에 따라 몸집이 크거나 키가 큰 사람을 도리어 놀릴 때도 있었으니, 아무래도 키를 가지고 사람을 논하거나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온당치 못한 처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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