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아내(5)-장자와 증자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교수/ 철학박사

지난 호에서 공자와 맹자의 아내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았거니와, 이번 호에서는 장자와 증자가 등장한다. 장자(莊子, 기원전 4세기 후반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의 경우 맹자와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내에 대해 역시 냉정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자의 아내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죽고 말았다. 그러자 친구인 혜시(박학다식하였으며, 재상을 지냈음)가 조문을 왔는데, 이때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리고 있었다. 이를 보고 혜시는 그대는 지금까지 아내와 잘 살아 왔고 그래서 애정도 두터울 터인데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이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하였다.

이에 장자는 그것이 아닐세. 나도 처음에는 놀라고 슬퍼서 소리 내어 울었다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소롭기 짝이 없지 않은가? 왜냐하면 그녀는 본래 삶도 없고, 형체도 없고, 그림자조차 없었지 않은가? 그러다가 어느 날, 큰 혼돈 속에서 음양의 두 기()가 발동하여 형체를 이룸으로써 그녀에게 비로소 삶이 주어졌네. 그리고 이제 삶에서 다시 죽음으로 돌아갔거늘, 이것은 춘하추동의 변화와 똑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 내 아내는 지금쯤 천지(天地)라고 하는 한 칸의 큰 거실 안에서 단잠을 자고 있을 걸세. 그런데도 내가 만일 소리를 치고 통곡을 하며 운다면, 천지간에 얼마나 어두운 사람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슬픔을 삭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터. 어쩌면 장자 역시 아내를 잃은 슬픔과 고통을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 속에서 승화시켜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일진대, 그의 태도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증자(기원전 504-436, 춘추시대 말기의 철학자)의 효심(孝心)은 너무나 유명하다.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작대기로 얻어맞아 정신을 잃었는데도, 깨어나고 나서 도리어 잘못을 빌었다고 하는 고사가 전해져올 정도이다. 그렇다면 아내에 대한 그의 태도는 어땠을까? 한 번은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고 하는데, 아이가 따라가려고 치맛자락에 매달려 울며 보챘다. 시달리다 못한 아내가 아이를 달랬다. “얘야. 얼른 들어가거라. 엄마가 돌아올 때, 돼지 잡아 줄께.”

그제야 아이는 겨우 울음을 그쳤다. 그런데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오니, 증자가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들고 묶어놓은 돼지를 막 잡으려 하고 있었다. 아내는 놀라 급히 뛰어들며, 그의 팔을 잡았다. “당신, 미쳤어요? 아이를 조금 속인 걸 가지고...”

이때 증자는 엄숙하게 말했다. “어떻게 아이를 속일 수 있단 말이오? 아이들이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부모만 보고 배우는 법이오. 지금 당신이 아이를 속이는 것은 장차 아이에게 남을 속이도록 가르치는 것이 되오. 이래 가지고서야 무슨 가정교육이 되겠소?”

말을 마친 증자는 돼지의 멱을 따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아내를 내쫒고 말았다. 그 이유인즉 아버지께서 삶은 배를 좋아하셨는데, 아내가 배를 잘못 삶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든 오늘날 이런 이유로 내쫒길 아내도 없겠거니와, 만일 그러려고 시도하는 남편이 있다면 법정싸움으로까지 가든지 SNS 등을 통하여 도리어 우세를 사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