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세자(世子)는 국사를 알 필요가 없다

조선 왕조실록 영조편에 실린 이야기이다.

사도세자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 이른바 노론벽파는 죄인의 아들은 임금이 될 수 없다죄인지자(罪人之子) 불위군왕(不爲君王)’이라는 팔자흉언(八字凶言)’을 조직적으로 유포시키며 세손(후일 정조)의 왕위계승을 겨냥한다.

죽은 세자의 아들이 왕위에 오를 경우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영조는 집경당에 대신들을 불러놓고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어린 세손이 노론·소론·남인·소북을 알겠는가? 국사(國事)를 알겠는가? 조사(조정 일)를 알겠는가?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누가 할 만한지 알겠는가? 나는 어린 세손에게 그것들을 알게 하고 싶다.('영조실록' 511120)”

노쇠한 왕이 세손에게 국사를 알도록 해서 왕위를 물려주고 싶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홍인한을 비롯한 김양택과 영의정 한익모 등 노론일색의 모든 대신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동궁(왕세손)은 노론이나 소론을 알 필요가 없고, 이조판서나 병조판서를 누가 할 수 있는지 알 필요가 없으며, 국사나 조사는 더욱 알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홍인한은 차라리 도끼에 베어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받들어 행할 수 없습니다.”라고까지 반발을 했다.

대신들의 강한 반대에 직면한 영조는 나의 사업조차 세손이 알게 할 수 없다는 말인가?”라고 기둥을 치며 울었다고 실록은 전한다.

이조참판 서명선은 동궁은 국사를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한 홍인한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세손이 알지 못한다면 어떤 사람이 알아야 하겠습니까?”라고 목숨을 건 상소를 올린다.

자기 집단 외에는 알 필요가 없고 알아서도 안된다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민중은 개돼지라서

2016년 이명박 정부시절,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나향욱은 기자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국민의 99% 계층인 민중은 개돼지"라고 비하하며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 등의 망언을 해 국민들의 공분을 산 적이 있었다.

더군다나 문제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그는 해당 발언에 대해 "공무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을 편하게 얘기한 것"인데 자신의 발언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해명을 거부하기 까지 했다.

결국 교육부는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에서 파면을 결정했으나 그는 파면이 부당하다며 취소청구소를 법원에 냈다.

갈수록 사회구조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국민통합에 찬물을 끼얹고 관료들의 신뢰를 추락시키며 정권에도 큰 부담을 준 사람이라 당시 정부여당에서 조차도 그를 옹호하지 않았다.

발언이 기사화된 이후 거의 일주일이 다 되도록 대중들의 분노는 식지 않았으며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각처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가재는 게편이라고 소수의 기득권층이라서 기득권층을 보호하고 싶었을까?

서울고법 행정11부는 2018, 나향욱 전 국장이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파면처분 취소 청구 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피고(교육부)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99% 민중의 개돼지론을 사실로 인정하고 싶었던 교육부 관료들이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민중은 사실상 개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민은 알 필요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수혁 의원이 또 한 번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액수를 묻는 기자들에게 분담금 금액을 국민이 정확히 알아서 뭐하느냐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야권에서는 이 의원의 여당 간사직 사퇴 및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수혁 의원은 지난 7일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1500억원 미만으로 합의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이에 취재원이 정확한 금액이 1380억 원대가 맞느냐고 묻자 이 의원이 국민이 1400억 원이면 어떻고 1500억 원이면 어떻고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그렇게 앞서 나갈 필요 없다. 국민이 정확하게 알아서 뭐 해라고 했다고 지난 10MBN이 보도했다.

사람이 먼저라고 소통을 강조하며 권위적인 지난 정부를 적폐로 심판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조선의 당파싸움에서 어느 한 정파가 정권을 획득하면 전 정파가 저지른 일들을 비판하면서도 똑 같이 닮아간다고 했다.

현 정부에서도 전 정부를 적폐로 비판하면서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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