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성회 주도, 50여일 옥중단식 후 29세 영면

불갑 테마공원 동상 앞에서 1711시 추모행사

5·18 민주화운동의 불씨를 당긴 영광출신 박관현 열사의 추모행사가 거행된다.

영광청년회의소(회장 박민준)17일 오전 11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박관현 열사 37주기 추모행사를 불갑농촌테마공원 인근에 설치된 박 열사 동상 앞에서 김준성 군수, 강필구 의장 등 기관사회단체장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한다. 기념식은 추모사, 박 열사의 약력 및 경과보고, 추모시 낭송, 참석자들의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된다.

박 열사는 1953년 불갑면 쌍운리 박정환·이금녀씨의 5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7년 불갑초교, 광주 수창초(6학년 전학), 광주동중을 거쳐 1973년 광주고를 졸업한 그는 육군 병장 제대 후 1978년 전남대 법대에 차석으로 입학해 법조인을 꿈꾸며 고시공부를 했다. 전남대 교수들이 독재를 비판하는 6·27 교육지표 사건이 터지며 연행되자 고시와 현실을 고민하던 그는 광주공단 노동자 실태조사 참여 및 광천들불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활동했다. 19804월 전남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후 그해 514일부터 사흘간 옛 전남도청 앞에서 진행된 민족민주화성회를 주도했다. 비상계엄해제 등을 요구하며 횃불을 들었던 이 성회는 5·18민주화운동의 불씨가 됐다. 신군부가 5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민주 인사들을 체포하자 서울로 피신했던 그는 공릉동의 한 공장에서 일했다. 198245일 체포된 그는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돼 그해 9월 광주지법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광주교도소에 수감 후 5·18 진상규명, 재소자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7~10월까지 3차례에 걸쳐 50여일간 단식하다 1011일 병보석 구속집행정지로 가족의 품에 안겼지만 다음날 새벽 장기단식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전남대 병원에서 영면했다. 29세의 짧았던 그의 주검은 고향마을 앞산에 묻혔다가 1996년 보훈처로부터 광주민주유공자로 인정돼 1997411일 국립 5·18 묘지에 안장됐다. 80년 전남대총학생회 동지회는 박 열사의 정신계승을 위해 민주인사, 유족 등의 뜻을 모아 19962월 관현장학재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7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5월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며 대표로 호명한 4명 중 박 열사를 부르기도 했다.

한편, 가족들은 지난 2013년 박 열사의 무죄를 주장하며 광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박 열사가 무죄는 맞지만 1심 선고 이후 숨져 재심 대상이 아니라고 기각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