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과 농업인이 힘을 모으는 농업인 행복시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심동덕(同心同德)의 자세로 농업·농촌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농협들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청년 농업인과 다문화가족, 귀농·귀촌인이 보다 쉽게 영농활동을 영위하고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영광신문은 농협중앙회 김병원 회장이 제시하는 이야기들을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기본에서 다시 권텀 리프를 추구하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누구나 성장을 이야기할 때면 <데미안>의 이 문구를 떠올린다.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 새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알에 머물 때는 중력의 지배를 받아야 했지만 알을 깨는 순간 자신의 두 날개로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다.

성장이란 이런 것이다. 단순히 키가 자라는 수준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이 달라진다. 이것을 퀀텀 리프(Quantum Leap)라고 한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주창한 퀀텀 리프는 비약적인 발전을 뜻하는 개념이다. 단계적으로 천천히 바뀌는 게 아니라 어느 지점에서 폭발하듯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대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 대나무 죽순은 씨를 뿌리고 3년째 됐을 때 간신히 땅을 뚫고 나온다. 그리고 4년째가 되어도 겨우 30센티미터밖에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5년째가 될 때부터 하루에 1미터씩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이 폭풍 성장의 비밀은 뿌리에 있다. 4~5년 동안 땅속에서 지반을 움켜쥐듯 깊이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위한 에너지를 끌어 모으는 것이다.

폭풍 성장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과정과도 흡사하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속도가 붙고, 점점 빨라지다가 마침내 에너지가 충분히 쌓였을 때 땅을 떠나 하늘로 날아오른다. 지면의 존재가 하늘의 존재로 바꾸는 순간 비행기는 중력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류의 발달사도 퀀텀 리프로 설명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수렵과 채취로 연명해오던 인류는 곡물을 재배하면서 1만 년의 농업시대를 거쳤고, 산업혁명을 통해 200년 동안 산업의 시대를 밟아왔다. 그리고 현재에 가까이 올수록 비례적인 성장이 아니라 급속히 성장하는 제곱의 법칙이 작용했다. 지금은 초연결 · 초지능 · 융복합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ICT · IOT · 인공지능 기반을 통해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생성되고 있다. 또 이것이 빅 데이터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 기술은 산술급수적인 발전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술과 문명의 폭풍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손흥민은 폭풍 성장의 아이콘으로 모자람이 없다. 그는 제도원의 훈련을 통해 탄생한 선수가 아니며 여덟 살 때부터 하루에 6시간씩 공 다루는 법만 익혔다. 멋지게 슈팅도 해보고 싶었겠지만 축구선수였던 아버지는 철저하게 기본기만 강조했다. 손홍민도 6년이 넘도록 지루하리만치 리프팅 기술만 익혔다. 시합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5학년이 됐을 때부터 비로소 슈팅 연습을 시작했고 하루에 1,000번이 넘는 슈팅을 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열여섯 살이 됐을 때 그는 보란 듯이 독일 함부르크팀에 스카우트되어 축구 유학의 길에 올랐고, 전설 차붐의 명성을 잇는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됐다.

지겹도록 반복했던 기본기 훈련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 여덟 살 때 축구를 시작해 첫 시합을 뛰기까지 8년이 걸렸습니다. 매일 몇 시간씩 볼을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는 훈련을 거듭해오던 어느 날, 날아드는 공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저를 봤습니다.”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하며 의아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대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훗날의 폭풍 성장을 준비하며 묵묵히 기본기를 다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성과만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초조하고 지루한 시간이겠지만, 사실은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철저하게 준비한 기본이야말로 도약의 비밀이라는 사실은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벨 연구소는 조직 전반에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정신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이들이 말하는 기본이란 소리를 멀리, 정확하게전달하는 것이다. 잡음 없는 신호를 잡기 위해 무섭도록 노력한 결과 이들은 급기야 우주가 팽창한다는 과학적 사실까지 알아냈다. ‘소리하나만을 쫓다가 어마어마한 천문학적 발견을 해낸 것이다.

벨 연구소의 성취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동시에 극단까지 치닫는 추진력과 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려는 창조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벨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임용되면 아무리 박사라도 전신주를 올라 전화선을 연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본에 집중한 결과 무선통신 시대를 열었고, 반도체 다이오드를 만들어냈으며, 실리콘벨리의 신화가 됐다.

구글, 아마존, 애플, 삼성 등의 초일류 기업은 경쟁가가 쫓아 올 수 없는 초격차 전략을 구사한다. 초격차란 단순히 기술이나 성과의 차이 또는 시장에서의 파워나 상대적 순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서비스를 개선하며 부단한 혁신을 이루고, 그에 걸맞은 조직원 개인의 역량을 갖추는 것까지 모두 초격차 전략의 범위 안에 있다.

초격차 전략의 핵심은 경쟁사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시스템, 인재관리, 조직문화 등에서 차원이 다른 격을 추구하는 것이다. 스스로 수준을 높임으로써 누구도 도전할 수 없도록 격차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폭풍 선장이 필수다.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에는 불연속적이고 비약적인, 퀀텀 리프를 통한 성장을 이뤄야 한다. 바로 그 때문에 기본이라는 토양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송흥민을 탄생시킨 지도자이자 아버지인 손정웅 씨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는 공이 전부입니다. 공에 모든 비밀이 담겨 있는데 이 공을 못 다루고 어떻게 축구를 하겠어요? 공의 비밀을 아는 데는 기본기 연습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퀀텀 리프를 생각해야 할 때가. 격이 다르고 차원이 다른 폭풍 성장을 위해서는 그 시작점부터 제대로 정해야 한다. 공이 축구의 전부이듯이 농협에서는 농업, 농촌, 농업인이 전부다. 농협이 초일류 협동조합이 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업, 농촌, 농업인이라는 기본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의 퀀텀 리프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마존의 화살은 그냥 날아가지 않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아마존닷컴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18년 하반기가 되자 세계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아마존닷컴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세 기업이 그려낸 주가 변동 그래프는 영화의 추격전을 방불케 한다.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인공지능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 영역을 끊임없이 넓혀왔다. 미국 내에서는 아마존이 수요를 독점해 경쟁사들을 초토화한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유럽연합 · 독일 · 일본 등지에서는 반독점 위반 협의로 조사가 시작됐다는 뉴스까지 흘러나왔다. 정책 당국에서도 아마존이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고 기술혁신에 장애를 주기 때문에 독점의 폐해가 있다고 거들고 나섰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비자들의 반응도 부정적으로 나타날 법한데 반응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우리는 고객에게 더 많은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한다는 철학을 지키고 있다.”

아마존의 경영철학을 요약한 것이다. 아마존은 자사가 진출한 사업영역에서는 피부에 와닿을 만큼 합리적인 가격 인하로 소비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혁신에 가까우리만치 새로운 IT기술을 도입하며 기존 업의 개념을 바꾸어가고 있다. 당국이 그들을 향해 뽑아 든 독점규제의 칼날이 민망할 정도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객중심적인 기업

아마존이 내건 비전이다. 많은 비용이 따르거나 손실을 감수해야 하더라도 고객의 입장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아마존에서 기업 서비스 부문 임원을 지낸 존 로스만은 저서 <아마존 웨이>를 통해 아마존이 고객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줬다.

크리스마스 특수를 앞두고 아마존에서 핑크 아이팟할인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4,000개가 팔릴 만큼 소비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프로모션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제조사인 애플 측에서 부품 문제가 발생하여 주문 물량을 공급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다른 기업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제품을 공급하지 않은 애플 측을 탓하면서 우리도 같은 피해자다. 고객들께는 환불 처리하겠다.’며 상황을 정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존은 달랐다. 직원들을 미국 전역의 소매 매장으로 즉시 파견해서 핑크 아이팟 4,000개를 정가로 구매했다. 그리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다시 분류하고 포장해서 고객들에게 무사히 배송을 마쳤다.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핵심 가치를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서 아마존은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봐야만 했다. 하지만 고객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그들에게 비용은 우선순위가 되지 않았다.

영국의 브랜드 평가 기업 브랜드 파이낸스가 발표한 ‘2018년 세계 500대 브랜드에서 아마존은 애플과 구글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듯하다. 막대한 손해를 무릅쓰고서도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낸 아마존의 사례를 고객중심이라는 핵심가치를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열대우림 지역이다.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던 미지의 땅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스페인 원정대에 의해서다. 원정다가 아마존을 탐사할 때 여자 원주민들에게 공격을 당했는데, 그 용맹함이 마치 그리스 신화의 아마조네스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그들을 아마존이라고 불렀다.

아마조네스는 가슴이 없는 여성 전사를 의미한다. 선천적으로 없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잘라낸 것이다. 활시위를 당길 때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성인식에 맞춰 가슴을 도려낸 것인데, 그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가혹한 운명을 내려준 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족을 지켜내야 한다는 전사로서의 존재 이유를 받아들였기에 기꺼이 고통을 이겨냈을 것이다.

아마존 로고에는 날아가는 화살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노란 화살을 보면서 사람의 웃는 모습을 상상한다.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의 미소라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화살이 A에서 시작해서 Z로 끝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존의 노란색 화살을 볼 때마다 아마조네스 여전사의 화살이 떠오른다. 입꼬리가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실은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기 때문에 휘어져 보이는 것이 아닐까. 그 화살은 아마존의 핵심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날아간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객중심적인 기업이라는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 그 안에 담긴 인내와 혁신에 고객은 감동한다.

아마존의 화살을 보며 농협의 화살을 생각해본다. 협동조합은 뚜렷한 존재 이유를 가진 조직이다. 조합원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향상이라는 목적이다. 현장에서 조합장이나 직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조합원들의 전이용을 아쉬워한다. 그래서 교육이나 회의 때마다 조합원의 참여와 협동을 외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협동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끊임없이 운동하는 생명체에 가깝다. 협동은 제도로 정착되어야 하며 조합원이 실익을 체감하게 할 때 더욱 강화될 수 있다. 환경에 맞게 혁신하려는 처절한 노력과 우리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협동조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마존의 화살과 같이, 핵심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세를 확실히 할 때 조합원과 국민은 감동하고 호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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