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르네상스 시대 이전부터 인문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새로운 개념의 작품을 창작 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당시 부유한 상인 가문들이 지불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가문이 바로 피렌체의 메디치가()였다.

유럽의 모든 주요 도시를 상대로 무역을 하며 경제적 절대성을 움켜쥔 메다치가는 그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는 권력의 활용을 가문 보호나 이윤추구라는 보신주의나 상업적 논리의 천박함에 허비하지 않고 인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예술가, 학자들이 학문 연구나 창작 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조건 없이 후원 함으로써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면죄부를 팔아 종교 개혁을 유발한 교황 레오 10세와 불멸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 두사람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메디치(Médicis) 가문과의 관계이다. 레오 10세는 메디치가의 일원이고 다빈치는 메디치가의 식객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사람들 명단에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군주론)을 지은 마키아벨리도 포함되어 있다. 종교재판에서 근신을 명 받은 후 여생을 메디치가의 보호 속에서 보낸 갈릴레이는

그래서 새로 발견한 목성의 위성에 '메디치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중세 후반과 근대 이탈리아 역사를 대변하는 메디치 가문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두 사람이 있다.

코시모(Cosimo de Médicis, 1389 ~ 1464)와 그의 손자 로렌초(Lorenzo de Médicis, 1449 ~ 1492). 문화 예술을 후원하고 대학에 막대한 기부금을 낸 '위대한 로렌초'는 수필과 극화를 남긴 르네상스의 문장가로도 기억되고 있다.

코시모는 현대 기업 경영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 로 상인과 군인, 예술가, 성직자 등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모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창조와 혁신을 실행한사람으로 그에게서 '메디치 효과'라는 용어가 나오기까지 했다.. 코시모는 고리대금업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교회와 도서관·병원 건립, 학문 지원에 쏟아부었다. 면죄부를 팔아 종교 개혁의 빌미를 제공한 교황 레오 10세와 서구적 자선 문화의 선구자가 한 집안에서 나왔다는 점이 이채롭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상업 자본으로 출발한 메디치가의 정치권력이 300년 넘게 유지된 유일한 사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많이 가질수록 불안하고, 외로워질 수 밖에 없는 자본의 속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가진만큼 아낌 없는 후원을 통해 당대의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메디치가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 외롭다.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와 친한 척 하지만,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그 누구도 그에게 있어 진정 한 벗으로 받아들일 상대는 없다.

지역사회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그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져 간다.

그를 향한 모든 사람들의 친근함과, 깎듯한 예의와, 미소에는 하나 같이 그에게 요구하는 치밀하고도 전략적인 무언의 손익 계산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어쩔 수 없다. 사업의 안정적 경영을 위해서는 이윤 추구 못지 않게 알건 모르건 주변 사람들로부터 적대적 감정을 사지 않토록 이른바 관리를 해야 한다. 상대적 경쟁관계라면 차라리 편안하고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평소 믿었던 사람들, 가까웠던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생트집을 잡고, 악성 루머를 퍼뜨리고...하는 가슴의 상처는 이미 난도질 당한 상태다.

그도 메디치가의 교훈처럼 나름의 기준을 정해놓고 아무도 몰래 여러 분야에 후원을 하고 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그 대상에서 빠진 사람들이 또 가만히 있질 않는다.

좋은일 하기도 참 힘든 세상이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천박한 자본의 속성(실은 자본 자체가 천박한 것이 아니라 그 속성에 의해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는 인간의 사고가 천박한 것이다)에 머물지 않고 자본의 속성에 의해 유발되는 인간성 상실의 폐혜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자신의 자본력으로 인문학을 비롯한 사회 각분야의 발전을 위해 후원하는데 작으나마 일조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지만 쓰는 것은 예술이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 영광에도 그런 사람들이 몇 명은 있기에 피렌체 이후의 르네상스처럼 모든 분야에서 오늘보다 나은 발전 지속이 가능한 영광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인류 구원의 메시아는 종교적 이념에 있는 것이 아니며, 기약할 수도 없이 막연한 그 어느 때가 되면 강림한다는 그 무엇도 아니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창출해내며 주변과 더불어 살고자 실천하는 조용한 그들이 진짜 메시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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