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공동체 살림꾼

아이들이 자꾸 뭘 사달라고 조를 때 참 난감하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와서 사 달라고 하거나, TV 광고에 나온 제품을 사 달라고 하기도 한다. 조르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은 지갑을 열고야 만다.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과 그저 갖고 싶은 물건의 차이를 아직은 잘 모를 나이다.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의 심리를 간파한 키즈 마케팅이 성공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친척을 만나거나 손님들이 와도 대부분 아이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돈을 준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는 건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들은 너무나 일찍 돈이 만들어내는 소비문화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일본의 사회운동가 우치다 타츠루는 책 <하류지향>에서 생활주체노동주체가 되기도 전에 소비주체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있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배움을 흥정하고 청년이 되어서는 노동으로부터 도피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는 학교의 붕괴 현상을 이러한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일찍부터 편입되어 버린 아이들이 교육마저도 등가교환식으로 사고하면서 배움이 실종되고 있다고 개탄한다. 아이들은 교육을 배움의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육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으로서 교사를, 배움을 바라본다. 배움이 실종된 자본주의 교육시스템 속에서 배움을 거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등가교환하는 아이들이 성장하면 어떻게 될까. 소비하는 인간, 경제적 인간로서의 자립성을 키울 것을 끊임없이 주입당해 온 아이들이 과연 자기 삶의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교육을 화폐와 상품’, ‘투자와 회수라는 비즈니스 모델로 바라보는 한, 변화하고 성숙하는 대신 소비주체들의 반복적인 교환행위가 교육의 가치를 잠식한다. 본디 배움이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역동적인 과정인데 말이다.

무서운 양극화 사회에서 등가교환식 사고에 젖어든 아이들은 과연 리스크를 이겨낼 만한 성숙한 인간으로 세상에 맞설 수 있을까. 저자의 결론을 단호하다. 아이들은 맞서는 대신, 분투하고 극복하는 대신 배움을 포기하고 노동에서 도피하는 계층하강의 하류지향을 선택할 것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양극화 사회의 역설이라는 관점에서 이 현상을 해석한다. 계층하강을 선택한 아이들은 양극화 사회에서 당연하게도 기회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기회로부터 멀어질수록 노력하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허상으로 변해간다. 점점 노력의 동기마저 사라져간다. 노력과 성과의 안정적인 관계의 붕괴야말로 양극화 리스크 사회의 특징이다. 양극화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사람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사이에 엄청난 계층 격차가 발생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양극화 시대 결과의 불평등은 실상 노력과 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해 점점 더 격차를 벌리고 있다.

시장에서 평등한 경제적 인간들의 세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사람보다 돈이 앞서는 세상에서 개인은 점점 고립되어 간다. 고립된 개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몫을 온전히 자기 자신의 힘으로 감당해 내야 하는데, 개인의 힘으로 양극화의 비극을 넘어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고립자립의 개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양극화 리스크 사회에서는 자기가 결정하고 그 결과도 혼자서 책임진다는 원리로는 살아나갈 수 없다. 이는 리스크 사회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 혹은 죽음의 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결과에 따른 책임을 공유할 수 있는 상부상조 집단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교육은 자기결정권과 더불어 사회적 관계 맺음과 공동체성 획득도 중요한 내용으로 다루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가정과 학교는 아이들이 공동체적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학습하고 수용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일 때 자기 삶의 진정한 주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원리를 체득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 이제 자꾸 뭘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를 어떻게 할까. 아이를 노동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인간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부모인 나부터 돈이 주는 익숙한 편리함과 어느 정도 선을 긋는 용기도 필요할 것 같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교육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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