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시인

한 스님이 젊은 과부집을 자주 드나드는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스님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부가 얼마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스님이 암에 걸린 젊은 과부를 위해 기도하고 돌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가장 혹독하게 비난했던 두 여인이 어느 날 스님을 찾아 와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들에게 보릿겨 한 줌씩 나누어 주며 들판에 가서 그것을 바람에 날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보릿겨를 날리고 온 여인들에게 스님은 다시 그 보릿겨를 주워 오라고 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바람에 날려 가버린 보릿겨를 무슨 수로 줍겠느냐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스님은 여인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용서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합니다 험담을 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만 상하게 하지만 험담은 한꺼번에 세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첫째는 험담을 하는 자신이요 다음은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었던 사람들이며 세 번째는 그 험담에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무관세음만 남기고 떠나간 스님의 말씀이 이번 총선거가 극에 도달한 순간까지 귀에 쟁쟁 했습니다. TV만 켜면 남의 가슴에 못을 박아대는 소리들이 난무했던 지난 날, 그들에게 스님이라도 드나들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까요

무조건 툭 뱉아놓고 후회는 하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판이 아니었을까 선량이라고 부를만큼 수준 높은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자부했던 사람들이 오직 그 판에만 끼어들면 누구랄 것 없이 쏟아대는 살인적(?)인 언어들은 지금쯤 어디서 흘러다니면서 지금도 남의 가슴을 에이고 있을까 좋은 말도 많은데 가장 속 질러대는 말만 끌어다가 퍼부어놓고 다음 날은 궁색하게 둘러대는 꼬락서니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선거판은 말, , , 말들의 장난으로 이어져서 유권자들은 얼굴이 찌푸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을 깎아내려야만 내가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판이라서 이해도 가지만 좀 더 깊은 생각과 안목으로 사려 깊은 말로도 얼마든지 상대를 깎아내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사전에 그런 안목의 깊이를 준비도 못하고 청중 앞에 서기 때문에 원색적이고 저주적인 막말만을 내뱉은 것이 아닐까요.

우리 속담이나 격언 중에는 말조심에 관한 지혜 담긴 문귀들이 제일 많은 까닭은 말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말조심 해야 하는 선인들의 예고가 아니었을까요 굳이 그런 속담을 끌어 들이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서도 말 실수로 인하여 시시비비 되는 일들이 제일 많습니다 서두에서 필자가 인용했던 예화자료에서 보듯 말은 입 밖으로 나오게 되면 날개 돋힌 듯 훨훨 날아 여ᅟᅵᆨ저기서 불씨가 되어 비온 뒤의 새싹 돋아나듯 무시로 솟아나서 더 큰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선거나 정치판이 아니더라도 인간 사회에서는 진짜 말을 조심 해야 됩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못 갚더라도 큰 화를 만들어 급기야 고소나 고발이 되어 불려 다니는 일이 없도록 말조심을 해보자는 말씀을 대신해서 필자의 졸시 <침묵, 그 순교의 백합을 먹으며> 라는 시로 끝을 맺습니다.

왜 할 말이 없겠니/참고 견디는 게 약이 된다는/조상대대로의 말씀/그래서 우린/침묵은 금이라면서도/나불대고 나불대다가/ 화를 만난 적도 부지기수였어//

풀과 나무의 씨는/지상에 묻히면 화려한 꽃/위대한 열매가 되거든/말의 씨는 입밖에 떨어지면/천 개 만 개 가시로 꽂히지//

그런데 하물며/무수히 입만 열어젖히면/쏟아대는 말,,말들//

침묵, 그 순교의 백합 좀 봐/몇 번이고 혀를 입밖으로 냈다가도/

침묵으로 거둬들이는 지혜/입술 사이 서슬푸른 칼을 들밀어도/지켜야 할 침묵에는 혀가 끊어지고/입이 찢어지고/그 허연 순교의 피와 살을 먹으면서도/천 배 만 배의 가시를 키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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