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

200여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런 상소를 올린다. 농사가 다른 일보다 못한 세 가지가 있다. 대우가 선비만 못하고 이익이 상업만 못하고, 편하기가 공업만 못하다. 이는 농업의 위상이 낮은 것을 걱정하고 개혁을 역설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농정책이다. 오래 전의 이야기 이지만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는 것을 보니 왠지 씁쓸함이 더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개인이든 조직이든 국가기관이든 어떤 조직형태를 떠나서 해야 할 역할을 구분해보면 반드시 해야 할 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 절대하지 말아야 할 일 3가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농협은 1961년 특별법 제정으로 탄생한 조직이다. 말 그대로 농업인을 위해 설립된 특수법인이며 농업인의 자율조직이다.

초창기의 농협은 사회전반에 만연해 있는 고리채로부터 탈출이 가장 핵심이었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기대한바 성과가 있었다.

2단계로 비료와 농약 등 농자재를 원활하게 공급하여 농업 생산력 증대와 주곡인 쌀 자급달성에 기여하였으며 농촌지역에 생활물자를 공급함으로써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농협이 반드시 해야 할 일! 농산물 계획생산과 유통이라는 가장 중요한 일을 놓치고 온점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농협이 설립될 초창기부터 UR(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는 농산물 계획생산과 농산물 유통에 대한 필요성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이 수익으로 이어졌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수렵시대를 끝낸 인류가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 풍년은 모두의 바램이자, 가장 큰 염원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풍년이 농민들의 근심거리로 전락해 풍년의 역설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흑백 TV속 아련한 추억의 한 장면처럼 여겨진다.

이처럼 세상은 엄청나게 많이 변했다. 정부의 공산품 위주의 수출정책은 농산물 수입으로 이어져왔고 일정부분 보완장치를 마련해도 편법과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수입까지는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농촌의 근간을 뒤흔들고 농산물가격 불안정으로 농업인이 고통과 아픔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필자의 생각은 농산물 계획생산을 토대로 소비지 농협이 주도하는 유통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그간 정부는 농업 관측사업, 수매비축사업, 산지폐기 등을 통해 주요 농산물의 가격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노력에도 여전히 주요 품목의 농산물 가격 등락폭이 계속되는 등 가격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다. 돌발적인 기상악화는 어쩔 수 없지만 과잉생산에 따른 농산물 가격하락은 농협 등의 계약재배 및 적정생산량 조절을 사전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질 경우 일정부분 해소가 가능하리라 본다. 이는 농협 혼자만이 아닌 정부, 지자체, 농업인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도시 농협과 중앙회는 소비지 농협답게 소비지에서 농산물 유통 점유율이 50% 이상이 되도록 끊임없는 유통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지금 현재 농산물 유통체계를 살펴보면 생산은 농촌, 소비는 도시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농산물 유통에 있어 농협은 롯데마트, 이마트 등과 비교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십여년 전부터 농협이 서둘러 소매유통 체계를 구축했다면 지금쯤 정착단계에 접어들었을 것인데 많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도시농협은 신용사업을 통해 큰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농산물 판매에 소홀히 하고 관심 밖이었다고 해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도시에서 대부분의 농산물이 소비되고, 특히 자원의 대부분이 도시로 집중되고 있기에 소비지 농협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하는 이유이다. 하나로마트 매장과 농산물 직거래장터 등을 통해 판매 역량을 집중 확충하고, 준조합원인 소비자를 조직해 농업, 농촌현장과 연결하는 등 농업인 조합원에게 실익을 줄 수 있는 역할과 사업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또한, 농촌·농협과 동행하고 상생하는 것, 그것이 도시농협 스스로 존립기반을 유지할 수 있고 도시에 소재하는 농협으로서의 명분도 강화하는 방법이며, 도시민들에게 농업, 농촌의 가치를 전파하는 것! 역시 도시농협의 중요한 역할이자 사명이라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도시농협이 농산물 소비지 판매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길 바라며, 농업인들에게는 안정적인 판로를 만들어주고,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도시농협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농촌과 도시의 농협이 함께 균형을 이뤄 상생·발전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도 더욱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반드시 해야 할 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자. 멀고 험한 길이지만 반드시 우리가 가야할 길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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