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

1884년 근대적 협동조합의 시초하고 할 수 있는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28명의 방직공들이 1파운드씩 출자한 작은 구멍가게로 시작한다. 이때는 산업혁명의 절정기였고 도시로 유입된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했다. 때문에 상인들의 담합과 횡포에 맞서 28명의 방직공들은 버터, 설탕, 밀가루, 곡물가루 등을 가게에 구비해 놓고 정직한 가격으로 판매하기 이른다.

하지만 출발은 순탄치 않았고, 상인들과 도매상들이 납품을 거부하자 그들은 직접 수레를 끌고 수십 km 떨어진 맨체스터까지 가서 물건을 구해 밤새 돌아오는 수고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경쟁이 아닌 협동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오늘날 전 세계 12억 인구가 참여하는 협동조합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이후 수많은 협동조합이 탄생, 성장하는 디딤돌이 되었고, 로치데일 원칙은 국제 협동조합운동의 기본원칙으로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협동조합은 정부와 맺는 관계와 역할에 따라 크게 세단계로 요약된다. 첫 번째 단계는 정치의 논리나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고 완전한 자조 주의가 추구되고 준수되는 단계다.

두 번째는 정부가 협동조합의 사회적, 경제적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협동 조합을 법과 제도로써 육성하거나 지원하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는 이렇게 배양된 조직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부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지역개발 임무를 대신하고, 시장경제 영역에서는 사기업과 공공부문의 균형자적 역할을 담당하는 단계이다. 많은 나라의 다양한 종류의 협동조합들이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고 또 거쳐왔다.

이 보편적인 발전과정에서 벗어난 네 번째 유형이 있다. 처음부터 정부가 주도하여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그 운영에 관여함으로써 협동조합을 정책 수행의 수단이나 보조기관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농협은 네 번째 유형에 속한다.

이렇듯 우리나라 협동조합은 태동 자체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설립되다보니 아직까지도 농협은 물론, 조합원의 역할과 의무가 확실히 적립되지 못한 체 수 십년을 보내왔고, 너무 빠른 민주적 농협을 추구하면서(대표적인 제도인 조합장 직선제) 정작 중요한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잃어버린 체 무조건 베푸는 것이 좋다는 잘못된 인식이 깊이 새겨져 버린 것이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태동으로 운영되던 농협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겪고 상당부분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아직도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농업분야에 대한 정부지원은 당연한 것임에도 마치 농협을 지원하고 있는 양 착각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정부, 정부와 같은 시각으로 중앙회가 왜 존재하는지 망각한 체 지역농협을 끌고 가고자 하는 중앙회, 진정한 지역농협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른체 농산물 소비지 유통을 외면하는 도시농협, 경영여건 탓 만하는 농촌농협, 내 농협이라는 주인의식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일부조합원, 장기집권이 조합장 역할을 잘해서, 그에 대한 조합원의 평가라고 오판하고 있는 일부 조합장. 그러면 언제까지 애써지은 농산물 값이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데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모두가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해결점을 찾을 수 없을까?

괘도를 이탈한 협동조합이 협동조합 설립 목적에 부합된 조직 즉 근본으로 돌아가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크게 몇 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 농협은 신용사업에서의 수익을 기반으로 경제사업 특히 각종 농산물 수매와 가격지지를 해왔으나 더 이상 신용사업이 수익자원으로써 역할을 기대 할 수 없게 되었다. 둘째, 농협의 주 활동 무대가 군 단위 지역이나 수익자원 유지를 위해 사업영역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줄어드는 지역 상권과 마찰이 갈수록 심화 될 것이며 같은 협동조합간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경영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셋째, 수입농산물의 범람 속에서 기초농산물 전체가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게 되고 협동조합의 역할만으로는 한계점에 다 다르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문제점이 발생될 것이며 비록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변화를 시도하고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협동조합을 정책 파트너로 대우를 하면서 농산물 생산, 출하 전반을 책임 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며, 소비지(도시)에서 농산물 유통을 농협이 책임 공급하는 비율을 늘려서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앙회는 모든 업무의 최우선 순위를 농축산물의 원활한 유통에다 중점을 두고, 제 역할을 하는 농협이 더 이상 경영에 어려움이 없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지역농협은 농촌과 도시 농협의 지역형편에 따라 농산물 취급 점유비를 전국적으로 최소 70~80%이상이 되도록 반드시 해내야 할 것이며 임직원도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농협은 경영체이면서도 운동체라는 인식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며 농협 즉 조직이 우선이 아니고 단순 월급쟁이라는 개념이라면 다른 직장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조합원들께서도 농협은 내 농협이란 인식을 확고하게 갖고 뭉치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손해 본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가져 주셔야 한다. 그리고 주인으로써 집행부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철저한 주인의식으로 무장할 때 협동조합이 제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프랑스 농업의 힘 크레디 아그리콜 협동조합, 케나다 퀘벡 협동조합처럼 구성원과 지역사회 모두에게 인정받는 협동조합, 어쩌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할 수 있으며 하루 빨리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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