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시인

산 허물지 마라

물길 막아대지 마라

 

산은 산대로 우뚝

물은 제 길로만 유유히

 

이 길만이 상생이다

산과의 약속이다

물과의 약속이다

 

그 상생의 약속 어기고 말았으니

화가 난 산들이

헛기침 한번 없이 흙투성이의 신발로

방안까지 덥썩 쳐들어올 수 밖에

 

덩달아서 순하디 순한 물까지도

방으로 고개 디밀고 말았다

 

어찌할 것이냐

어찌할 것이냐

 

이 방 저 방 이 집 저 집 마구 흙발로 짓이겨대며

우리들을 내몰고 있지 않은가

 

어디로 갈 것이냐

어디로 갈 것이냐

 

산이 우리보다 앞질러 가버렸다

물도 우리보다 앞질러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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