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숙 시인

박혜숙 시인
박혜숙 시인

가을은 언제나 빨리 찾아온다. 강원도 설악산계곡에 단풍이 물들 즈음, 찬 기운 가득한 바람은 쌩하고 우리 곁에 와 있다. 미리 준비하고 가을을 만끽하려는 산행이라도 가지 않는다면 코앞에 다가온 시베리아 겨울바람을 그냥 마주 하게 된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를 아파트 주차장에서 마주하게 될 때는 이미 춥다.

군대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그 시간은 돌아간다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올 한해는 코로나19와 잇따른 자연재해로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본 적 없는 군대인데 입대한 신병이라도 된 듯 코로나를 대해야 하는 환경이 낯설기만 하다. 그 답답한 시간의 흐름 속에 또 계절은 찾아왔다. 길었던 장마로 그 피해가 복구되기도 전에 태풍이 왔다. 그냥 지나치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들이 너무 멀어져서 잊을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차가운 겨울바람도 반갑다. 조금씩이지만 자연은 그래도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와 주네라는 안도에 한숨도 내쉬어본다. 쌀쌀해지니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지인들과 따뜻한 음식을 앞에 두고 오손도손 수다를 떠는 일상이 그것이다. 코로나19가 아직 종식되지 않고 있어 사람을 만나기가 조심스럽다. 그래서 더욱 그립다.

날씨가 추워지면 로맨스 영화가 더 인기가 있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옆구리가 시럽다라고 하는 것은 꼭 겉옷이 따뜻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그 비유적 표현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 마음에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피부로 느껴지는 싸늘함에 우린 본능적으로 그 따뜻함을 찾는다. 날씨가 따뜻할 때보다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져서 영화도 로맨스를 더 본다고 한다. 코미디나 드라마와 같은 장르는 온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가을과 겨울에 사랑이 더 깊어지고 찾게 되는가보다.

따뜻함의 개념은 감정적인 상태로 심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될 때도 심리적인 따뜻함과 똑같은 감정 상태가 만들어 진다. 따뜻한 물체를 들고 있을 때나 따뜻한 방에 앉아있을 때처럼 우리 신체가 따뜻해지면 모르는 타인에게 친밀감을 보인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 반응이 특정 감정을 활성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온도는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실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의 날씨가 어떤 가에 따라 신체활동 정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스코틀랜드, 네델란드, 프랑스 및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4월과 8월 사이 봄과 여름에 가장 활발한 신체활동을 한다. 하지만 이에 비해 더 온도가 높은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 가장 더운 7월에는 신체활동이 가장 적다. 그 뿐만 아니라 온도는 소비자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은 시원한방보다 따뜻한 방에서 특정 제품을 더 선호했다. 한 연구에 의하면 따뜻한 패드를 든 참가자들은 차가운 패드를 들었던 참가자들보다 제품에 대하여 훨씬 더 큰 비용을 지불할 의사를 나타냈다. 돈 대신 다른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74%였지만 차가운 패드를 든 참가자들은 47%에 불과했다. 즉 날씨가 차가워질수록 돈에 대한 집착이 일어나고 각박한 심리가 작용하게 된다. 온라인 쇼핑포털을 조사한 결과, 사람들이 주변을 따뜻하게 인식하면 할수록 구매하기 버튼을 클릭할 가능성이 높았다.

춥고 서늘하다고 느낄 때 보다는 따뜻하다고 느낄 때, 다른 사람에 대하려 관대해지고 그 사람이 배려심도 깊은 사람이라고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온도뿐 아니라 습도나 하루 일조량 역시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준다. 습도가 높으면 집중력이 감소하고 졸음이 증가 한다. 적당히 따뜻한 온도는 불안과 회의감을 감소시킨다. 그런가하면 겨울에 자살위험이 가장 높다는 주장과 겨울 이후 화사한 봄에 자살 위험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이 상반되지만 분명한 것은 기온과 자살 간 관련성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무덥고 습한 여름이 끝나고 나서오는 청정한 가을 공기에 사람들은 차분해지게 된다. 이성적인 판단도 증가하고 기억력도 향상되고 기분이나 감정도 안정된다. 그런가 하면 낮아진 기온으로 인해 우울감이나 외로움을 더욱 자주 느끼게 된다. 포루투칼에서 이루어진 2만 명이상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날씨와 휴대폰 통화량 사이에도 관련성이 있다. 지나치게 춥거나 덥고 바람이 너무 불거나 장마와 태풍에 시달리는 날씨에는 통화량이 줄어들고 쌀쌀한 늦가을이나 초겨울에는 통화량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낮아진 기온으로 체온이 떨어지면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해진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따듯함이 그리워진다. 만나기가 어렵다면 전화, 문자로라도 그 따뜻함을 주고받자. 가을은 짧게 머문다. 기나긴 겨울이 올 것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요즘이다. 차가운 바람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온도를 높이자. 남은 12월과 겨울, 마음속에 감기가 올 수 없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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