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공동체 살림꾼

만약 새로운 천년에 우리가 우리를 위협하는 환경재앙과 사회적 붕괴를 피하려면, 우리는 지구촌을 포기하고 세계화 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 중심의 경제를 껴안지 않으면 안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1992년에 출간한 <오래된 미래>에서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서문에 쓴 말이다. 30년 전의 예견은 적중했다. 지구 환경 생태계를 파괴하고 개발과 성장에 몰두한 결과, 인류는 환경 재난과 경제 파탄이라는 두 개의 파국적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그 정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이것은 대자연의 준엄한 경고이면서, 신이 인류에게 부여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들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가득찼던 2020년의 세밑에서 다시 이 책을 꺼내들었다. 어떻게 다시 회복하여 희망을 만들어갈 것인가.

<오래된 미래>는 저자가 히말라야 티벳의 작은 마을 라다크를 16년에 걸쳐 관찰하고 체험한 끝에 내놓은 현장 보고서이다. 따뜻한 미소와 삶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마음의 평화, 이웃에 대한 배려로 충만한 이들. 라다크인들에게 문명의 발달, 산업화, 도시화는 행복한 인생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경쟁의 원리 대신 상호부조와 연대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회,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망속에서 개인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이 상충되지 않는 사회가 히말라야 속 작은 마을 라다크이다. 경쟁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도시민들에 비해, 라다크인들의 삶은 안정되어 있다. 그들의 삶은 서로에게 상호의존되어 있지만 의존적이지는 않다. 도시민들에 비해 정서적으로 덜 의존적이면서 타인을 구속하지 않는다. 라다크 마을의 여성 체링 돌마는 이렇게 반문한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호지는 라다크에 체류하면서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외부세계에 개방된 직후 지속불가능한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목격했다. 환경오염과 실업, 빈부격차의 심화가 확연해졌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사람들에게 불화와 우울함이 생겨난 것이었다. 세계화로의 진입, 그것은 라다크인들이 수 세기동안 쌓아왔던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무너뜨린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는 비단 라다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가 수용된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세계화의 영향력은 전방위적이다. 비단 경제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의 방식과 자아의식 등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재앙에 가까운 환경파괴와 신자유주의에 따른 빈곤의 확산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의 삽질은 녹색의 땅을 집어삼키고 그 안에서 오랜 기간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의 행복을 박탈한다. 현대 산업문명은 이미 지구가 감당할만한 생태적 한계를 넘어섰다. 파괴적 성장의 종식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과감한 방향전환이 없다면 인류는 공유지의 비극에 갇혀 자멸의 길로 빠져들 것이다.

세계화에서 지역화로의 전환, 대도시에서 농촌으로의 전환, 집중에서 분산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오래된 미래>에서도 역설했듯이, 방향 전환의 거처는 지역이다. 작금의 현실에서 지역사회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가능성 높은 대안이다. 성장과 소비를 증대시키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 농촌이 부활하고, 지역사회가 살아나야 골고루 행복한 사회를 꿈꿀 수 있다.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삶이 가능해야 하고,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지역화 시대에 지속가능한 사회의 세포가 될 공동체의 복원력을 키워야 한다. 지역 공동체가 상호연대, 호혜평등으로 방식으로 관계망을 복원하고 지역 내 삶을 재조직할 때 지역사회는 위기 극복의 대안 거점이 될 것이다. 나는 영광 지역사회가 그런 꿈을 꿨으면 좋겠다. 원주민은 떠나지 않고 새로운 이들은 살기 위해 들어와 화합하고 공진화해나가는 사회를 꿈꾼다. 구태의연한 개발 논리를 그대로 적용해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자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가치를 살리고 지역 주민들의 삶이 품격있을 수 있도록 하는데 민관이 힘을 합치는 것이다.

더 많이보다는 더 낫게’. 2021년은 영광이 사람 살기에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살아도 될만한 가치있는곳이 되어야 지속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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