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영향력-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천재교육을 받았다. 세 살 때 희랍어를 배웠는데, 아버지는 손수 단어장을 만들어주고 옆에 앉아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도록 했다. 아침 소풍에는 어제의 독서 내용을 아버지에게 보고하고, 또 아버지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대답을 잘하지 못하면, 화를 내기도 했다. 밀은 휴일도 없이 독서에 열중해야 했기 때문에, 또래의 친구하고 놀 수도 없었다.

세 살 때부터 이솝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밀은 다섯 살 때 그리스의 고전들을 독파하고, 여섯 살 때 기하학과 대수(代數)를 익혔으며, 일곱 살 때는 플라톤을 원서로 읽었다. 여덟 살 때 라틴어를 배워, 4년 후에는 이에 능통했다. 열 살 때 뉴턴(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물리학자)의 저서를 공부하고, 로마정부의 기본이념에 관한 책을 썼다. 그리고 열 살 이전부터 동생들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쳤는데, 이는 자신이 배운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아버지의 배려였다. 열한 살에는 물리학화학에 관한 논문들을 읽었으며, 열두 살 때는 아리스토텔레스, 열세 살 때는 애덤 스미스(‘고전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경제학자), 열여섯 살 때는 계몽주의 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열일곱 살에 동인도 회사(17세기 초 영국이 동인도에 설립한 무역회사)공무원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인도에 보내는 통신문을 책임지는 수석조사관의 일을 했는데, 1년 연봉이 인도청 장관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식 위주의 교육만 받은 탓에 어느 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스무 살 무렵, 일종의 무력감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는 많은 지식을 주입받은 청소년은 그 지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 남을 따라 할 줄밖에 모르는 앵무새가 되기 쉽다.”고 말한 바 있다. 다행히 이후 예술에 취미를 붙이고, 과부와 결혼함으로써 정신적으로 회복되긴 했지만.

하지만 밀이 받은 교육이 실제로는 주입식이 아니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의 아버지는 가르치기 전에, 아들이 스스로 그러한 개념들을 이해하도록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또 아들이 여러 방면으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절대 가르치지 않았다. 가르치려는 분야와 관련된 책을 여러 번 읽게 하여, 그 안에 담긴 저자의 뜻을 완전히 파악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도를 정확히 측정할만한 질문을 던지는, 질의응답식 교육을 했던 것이다.

아들이 10살이 좀 지났을 때는 여러 가지 논점에 대하여 토론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풍성한 표현력을 계발하기 위해 유명한 고전 시들을 읽게 하고, 또 자신의 시를 쓰도록 하였다.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분야에 대해서도 논문을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말하도록 하였다. 또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더 나은 이해를 돕기 위해, 틈이 나는 대로 동생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하지만 밀이 싫어하는 공부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산술(算術-수학)이었다. 아버지는 학습에 흥미를 붙여주기 위해,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라고도 불리는 중동 지역의 민담집)돈키호테(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풍자소설)같은 재미있는 작품들도 빌려다 주었다.

또 아들이 교만하게 될까 봐, 늘 경계하였다. 이 때문에 어린 시절의 밀은 자신이 남들보다 특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재능은 평균 이하로 여겼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또래 친구들이나 세상의 나쁜 풍조에 물드는 것을 염려하여, 예체능 방면은 가르치지 않았다. 이런 탓에 밀은 손재주와 같은 일상적인 일에 서툴렀으며, 재빠르지 못하다고 늘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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