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공동체 살림꾼

이 책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우리가 알던 경제 성장은 끝났다. 아니, 결딴났다.” ‘석유정점'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이자, 환경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리처드 하인버그는 책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의 첫 줄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성장'이란 경제의 전체 규모가 커지고, 즉 경제에 참여하는 인구가 늘고 통화 회전율이 증가하고 경제에 흘러드는 에너지와 재화의 양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일시적, 상대적으로 경기가 상승 하강을 반복할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인류의 역사가 성장의 종말'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들어섰다는 징후는 확연하다. 하인버그는 인류 역사가 다섯번째 대전환을 맞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전환은 거의 200만년 전에 일어난 불의 사용이다. 두 번째 전환은 언어의 발명이다. 세 번째 전환은 1만년 전에 시작된 농업 혁명이다. 네번째 전환인 산업혁명은 불과 200년전에 시작되었으며 값싼 화석연료 에너지를 토대로 생산과 운송에서 획기적인 확대를 가져왔다. 과거 네 번의 전환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팽창이다. 하지만 에너지 고갈과 파국적 환경 재앙속에서 맞이하게 될 다섯번째 전환은 팽창이 아니라 축소.

성장 시대가 끝나는 이유로는 자원고갈, 환경파괴, 구조적 금융통화 실패가 얽혀있다. 이 중에서 팽창을 가로막는 핵심 장벽을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자원고갈, 즉 석유다. 학자마다 의견이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석유는 이미 피크오일을 지났거나, 피크오일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수레바퀴를 쉼없이 돌려온 것은 석유였다. 석유의 고갈이 가져올 파국적 시나리오가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면 90년대 북한의 식량난을 떠올려보면 된다. 북한 식량난의 본질은 에너지난이었다. 대북봉쇄정책으로 인해 연료 수급을 완전히 차단당하자 북한은 아사자가 속출하는 최악의 식량위기를 맞딱드려야 했다. 북한의 경우처럼 현재의 위기는 터지는 순간 연착륙보다는 심각한 정치 경제적 갈등과 분쟁을 동반하는 경착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석유가 희소해질수록 자본주의 산업문명에 의존하는 생활이 실제로 얼마나 큰 비용을 감당하게 될 것인지는 계산하기조차 어렵다.

석유의 고갈은 이동성을 줄인다.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가 자연스러운 대세로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계 문명에 의존하던 전문화대신 일반화가 더 필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 성장의 종말은 한 시대의 종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서 기존 철학과 생활방식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역사 이래 인류가 축적해왔던 문명의 유산과 기술의 노하우를 유실시키지 않으면서 지역화 시대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현실에 맞지 않는 경제이론들부터 폐기처분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제가 영구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허구적 믿음을 내다 버리는 것이다. 보수는 물론이거니와 성장의 신기루에 사로잡혀 있기는 진보도 만만치 않다. 자본주의가 브레이크 없는 성장을 향해 질주했듯이, 사회주의 또한 계속 성장을 체제 유지의 최대 과제로 삼았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 이제 성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새로운 시대의 리더들이 첫 번째로 답해야 할 질문이다.

하인버그는 “‘더 많이가 아니라 더 낫게를 추구해야 하며, 무작정 경제활동을 증가시킬 것이 아니라 소비를 부추기지 않으면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경제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소비 위주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겠거니와, 동시에 화석 연료 이후의 세상을 예비하는 정치경제적 패러다임의 전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책에는 성장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여러 흐름들도 소개하고 있는데, 핵심은 지역화 시대 지속가능한 사회의 세포가 될 공동체의 복원력을 키우는 것이다. 하인버그는 이웃과 안면을 트고 관계를 맺는 것에서부터 위기에 대한 대비를 시작하라고 말할 정도로 공동체의 복원력을 중요시한다. 공동체가 상호연대의 방식을 통한 위기 극복의 대안 거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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