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권유한 부모-마하비라

기원전 6세기 무렵 인도에서는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낸 두 가지 운동이 자이나교와 불교였다.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는 기원전 599년 바이살리 근처의 크샤트리아 가문에서 태어났다. 군주의 아들이었던 마하비라는 어려서부터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사후의 영생(永生)을 저주스럽게 여기고, 자살을 허용하는 종파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자살을 심지어 바람직스럽다고 보는 교리에 따라 스스로 굶어 죽고 말았다. 이러한 일을 눈여겨 보아온 마하비라는 세상의 모든 기쁨을 포기하고, 금욕주의자로서 일생을 보내기로 맘먹는다. 마침내 그는 30세 때 지위와 재산을 버리고 구도(求道)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금욕과 불살생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12년간 고행을 했다.

그러던 중 13년째 해의 여름에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육체를 비롯한 물질세계, 그리고 모든 욕망에 대한 승리를 거둔 지나’(Jina), 정복자가 된 것이다. 바로 여기서 자이나교라는 이름이 나왔다. 이후 마하비라는 30년 동안 신도들을 이끌고 가르치다가 기원전 52772세를 일기로 해탈(사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자이나교에서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윤회에서 벗어난 해탈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 해탈을 이루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은 금욕과 고행이라고 주장한다. 마하비라의 가르침을 다섯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생물도 죽이지 않는다(불살생). 둘째,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셋째, 어떤 탐욕도 지니지 않는다(무소유). 넷째, 어떤 음욕(淫慾)도 품지 않는다. 다섯째, 어떤 집착도 갖지 않는다. 보다시피, 다른 종교들과 그 뜻은 비슷하다. 하지만 세부항목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이나교의 승려들은 이 땅의 몸을 해치지 않기 위해 땅을 파지 않는다. 그들은 물의 몸을 해치지 않기 위해 수영과 목욕, 또는 빗속에 걷는 것을 피한다. 불의 몸을 해치지 않도록 불을 켜거나 끄지 않는다. 공기의 몸을 해치지 않기 위해 갑작스러운 운동을 하지 않는다. 길가에 자라고 있는 식물을 해치지 않기 위해 걸을 때도 매우 조심한다. 심지어 작은 식물들이 밟히지 않도록 옆으로 치우기 위해, 앞길을 빗자루로 쓸고 간다. 그리고 공중에 있는 생명체를 들이마셔 파괴하지 않도록 코를 헝겊으로 가린다. 20세기의 인물 가운데 자이나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인물은 마하트마 간디. 그가 지킨 철저한 채식주의와 비폭력 사상 역시 자이나교에서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측된다.

그야 어떠하든, 자살을 허용하는 부모 밑에서 어떻게 이런 교리를 주창한 교주가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수도사들은 기본적으로 채식주의자이다. 하지만 무화과처럼 작은 씨앗이 많이 들어있는 과일은 먹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씨앗 하나하나가 생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벌꿀도 먹을 수 없었고, 심지어 물을 마실 때도 헝겊에 걸러 마셨다. 하지만 불살생의 원칙을 확실하게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가령, 농사를 지을 때 해충(害蟲)이나 가축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이나교 신도들은 점차 농업 이외의 사업, 특히 상업으로 진출하여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아울러 자이나교는 비록 평신도라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도덕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존경을 받게 되었다. (영광 출신, 소설가,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저서거꾸로 읽는 철학 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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