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희/ 전 홍농농협 조합장

우선 농산물 재배 농민들과 유통인들 공히 농업의 현실을 보란 듯이 외면한 식품의약품 안전처의 어설픈 탁상행정에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농업계는 드디어 분통을 터트리고 말았다. 더욱이 식약처는 농축수산물에 생산연도 또는 생산연월일(채취·수확·어획·도축한 연도 또는 연월일)’표시를 의무화한 식품등의 표시기준 고시를 개정 20221월부터 시행한다고 고시한 바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농···수산물 가운데 그 내용물을 시각, 후각 등 관능적으로 확인 가능하게 비닐랩 등으로 투명 포장한 것은 제조연월일(포장일 또는 생산연도) 한글표시를 생략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해당 조항을 삭제해 버린 채 직거래를 통해 유통되는 농산물 등은 예외로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뤄진 황당하기 이룰 데 없는 규제조치였다. 그런데도 관계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는 충분한 협의도 없었고 당사자인 농업계에도 사전에 이렇다할 설명도 없이 1년여가 지난 지금에서야 이같은 중요한 사항이 알려졌다.

사실 바뀐 고시를 따르려면 상추등 유통기간이 매우 짧은 신선농산물도 생산연월일을 표시해야 하는데 일정월에 생산해 해당월에 소비가 끝나는데도 생산연도 표시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감귤류나 겨울무처럼 연말과 연초등 두해에 걸쳐 수확하는 작물도 어쩌면 걱정이 아닐 수 없는데 각각의 생산연도를 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들 작물의 경우 상당기간 저장 후 출하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지만 전년도 생산된 작물은 상품화 했기에 자칫 오래된 농산물이라는 오명이 붙어 소비위축을 부를 수도 있다. 최근 소비가 늘고 있는 간편 조리세트(밀키트)나 채소 샐러드등 생산연도가 섞인 농식품은 아예 표시 자체가 힘든 실정이다.

이번 고시 개정이 식약처가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더라도 농산물 유통현장의 실상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주무처이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농식품부도 책임차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지금 우리 농촌은 2년째 지속되고 있는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 유입이 거의 막히면서 일손부족이 참으로 심각한 가운데 인건비가 사정없이 치솟고 각종 자재비마저 전에 없이 오르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고시를 이행하려면 많은 일손이 필요한데 저장농산물은 생산연도별로 공간까지 분리해 적재해 두어야 할 형편이다. 아울러 표시를 위한 설비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에 산지농가는 물론 유통업계 역시 그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참으로 농업현실을 너무나도 외면한 금번 정책은 당연히 철회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건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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