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신문 편집위원·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멀리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인도의 코브라 보상법

19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한창이던 시절,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델리에는 코브라로 인한 인명피해가 막심했다.

많은 주민들이 맹독성을 가진 코브라에 물려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등 그 피해가 끊이질 않자 영국의 식민지 정부는 인명피해를 줄이고자 코브라 퇴치법을 제정하였다.

죽은 코브라를 가져오는 사람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아주 단순한 정책이었다.

법이 시행되면서 코브라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델리 주민들은 너도나도 코브라 잡이에 나섰다.

그러나 코브라의 남획으로 잡히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면서 덩달아 보상금마저 줄어들자 급기야 주민들은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코브라를 사육하기에 이르렀다.

뒤늦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당국은 보상법을 취소하였지만 이에 화가 난 주민들이 사육하던 코브라를 길거리에 풀어놓음으로써 델리거리에는 오히려 보상법 시행 전보다 더 많은 코브라가 득실대게 되었다.

코브라의 피해를 줄이고자 시행했던 법이 오히려 맹독성 코브라를 늘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말았던 것이다.

모택동의 참새박멸

중국 공산혁명을 완수한 마오저뚱은 1958년 식량 증산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농촌을 방문하던 중 벼 낟알을 주워 먹는 참새를 보고 해로운 새라며 참새박멸 지시를 내렸다.

당시 쓰촨성의 기록을 보면 쓰촨성에 서식하는 320만마리의 참새가 마리당 1년에 24Kg의 벼이삭을 먹고 있는데 이는 년 7,680톤으로 32천명이 1년을 날 수 있는 식량이라고 보고를 하고 있었다.

중국 전역에서 5천만 마리의 참새만 박멸하여도 매년 300만명 분의 식량이 확보됨으로 참새가 쪼아먹는 쌀알을 지켜 수확량을 늘리자는 계획이었다.

그 후 농촌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참새 박멸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전국에서 무려 20억마리에 달하는 참새가 떼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시작했던 참새박멸운동의 결과는 참담하기만 했다.

참새가 사라지자 쌀 수확이 늘어나기는커녕 도리어 빈 자리를 파고든 병해충과 메뚜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병해충의 폐해로 인해 극심한 흉작이 이어졌던 것이다

참새박멸이 절정이었던 1958년부터 1962년까지 5년 동안 흉작으로 인해 4천만 명이 굶어 죽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결국 참새박멸로 인한 병해충의 증가가 흉작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모택동은 당시 소련에까지 공무원을 파견해 참새를 수입해 오는 일대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도자의 오판으로 인해 굶어 죽은 4000만명은 중국 공산당이 중일전쟁 당시 전,사상자라고 주장하는 3,500만명보다도 더 많은 숫자였다.

갈팡질팡 부동산 정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몇 년째 갈팡질팡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임기 중에 부동산만큼은 확실하게 잡겠다며 스무 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날이 갈수록 집값은 폭등을 해왔다.

특히 올 초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였던 부동산 3법 마저 기대와는 달리 졸속입법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골치법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세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관계로 중과세를 통해 부동산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정책을 따지고 논할만한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그 중과세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직도 계속해서 치솟고 있는 집값을 보면 그 정책도 좋은 정책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땜질식으로 고치려 하다 보면 인도의 코브라 보상법이나 중국의 참새퇴치 정책처럼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유념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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