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

다산 정약용 선생은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면서 뛰어난 행정가였지만 시인으로써 명성 또한 대단 했다고 한다. 그 시기에는 모두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고 중국의 역사적 사실들을 끌어다가 시를 지어야 참다운 시라고 말할 때 정약용 선생은 과감하게 그런 습속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서에서 시를 찾고 당시 세속적인 풍속에서 글의 주제를 삼아 시를 지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로써는 대단한 결의가 아니고는 도저히 생각 할 수 없었던 일인 것 같다.

새로 심은 호박에 떡잎 나서 살찌더니, 밤사이 넝쿨 뻗어 사립문에 얽혔네.. 평생에 안 심을 건 맛 좋은 수박이라 관노들 몰려와서 시비 걸까 걱정이네”(다산 정약용)

남의 것을 빼앗는 관청이나 아전들이 맛있는 수박을 달라고 조를까 봐 걱정이라는 농민들의 애절한 처지가 서글프다. 수박이 맛있으면 있을수록 수탈을 막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우리 농민들은 그렇게 당하고 빼앗기며 살아왔다. 농촌 풍경을 읊고 농사짓는 모습을 그린 시에서도 다산은 농민들의 아픔을 결코 놓치지 않고 하소연 하듯 시로 읊었다. 오늘날에는 관청에서 빼앗아가는 아픔은 없지만 수십년째 농가소득은 제 자리 걸음이며 기회가 있으면 수입하는 수입농산물 덕분에 농산물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또 다른 아픔에 처해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근 국방부가 군납 식자재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을 골자로 한 군급식 체계 개편안을 내놓고 있어 저가 경쟁으로 저 품질 식자재와 수입농산물 공급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고 우리 농협도 군납 고춧가루를 납품하고 있어 농가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건의 발단은 올봄 군 급식 부실 논란이었다. 함량 미달의 식사가 제공됐다는 폭로가 잇따르는 가운데 먹을 것 없는 급식에 대한 불만이 높아 국방부에서는 여러 각도로 개선책을 수립하는 모양세 이다.

군 급식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방위사업청이 농협중앙회와 협의해 군납계약단가를 산정했으나 올해부터는 조달청에서 업무를 맡으면서 가격정보에 대한 사전고지나 협의 없이 군부대에 직접 통보하는 방식이다. 특히 조달청에서 제시하는 군납 농산물 납품단가는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2개년 평균 도매가격을 기준으로 매겨진다. 그러다보니 수입량 증가에 따라 농산물 평균 도매 값이 떨어지면 군납 납품단가도 덩달아 하향 조정돼 군납농가에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대기업 가공식품 위주의 장병 식당을 구성하는 방향도 논의 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군주요 수뇌부와 식품 대기업 관계자가 참석한 세미나에선 대기업 가공식품 군납에 대한 논의가 오갔고, 민간 경쟁체제 도입에 따른 군납 농협, 농가의 피해 최소화 방안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세미나 발표자들은 젊은 장병들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대기업의 가공식품, 간편식을 적극 공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고, 민간업체에서는 장병들의 입맛에 친숙한 대기업의 완, 반 조리 식품을 군급식에 도입하면 메뉴 다양성이 확대되고 조리 편의성도 높아질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군 부실급식 문제는 단가, 조리인력 등 여러 요소와 얽혀 있는 사안인 만큼 식재료 조달체계에서만 원인대책을 찾아선 안 된다. 특히 가공식품, 간편식 위주 식단 등 젊은 장병들의 선호도에만 주안점을 둔다면 군인들의 건강을 해치고 잘못된 식습관 형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어린자녀가 초코렛이나 사탕을 좋아한다고 마냥 먹이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입맛에 맞는 것이 건강에 좋은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농협은 1970년 국방부와 협약을 통해 군에 안전하고 질 좋은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자 군급식 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을 맺고 그간 수의계약 방식을 유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기업 등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경쟁조달 체계가 도입되면 과도한 저가 경쟁으로 군 급식 식재료의 질이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또한 민간 기업이 저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값싼 수입 농축수산물 공급을 확대할 여지도 다분하다.

군급식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에 기반한 농축산물 수의계약은 국내 농업인들의 소득증대를 도모하기 위한 체계이기도 한다. 이번 군급식체계 개편으로 기존 군납농가들이 판로는 잃는 등 피해가 불가피하고 군납 농협이 경쟁입찰에 참여한다고 해도 농가소득을 고려해 대형 유통업체등의 저가 전략에 맞서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방부의 2021년도 급식 방침에 따르면 올해 장병 일일 급식비는 8,790원으로 1만원에 못 미친다고 한다. 즉 한끼의 식대는 2,930원꼴로 시중 편의점에서 주력 판매하는 4,000원대 도시락 제품에 견줘도 한없이 낮은 단가이다.

농민신문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초등학생, 중학생과 병사급식의 한끼 당 단기를 비교한 결과, 올해 군인 급식비는 초등학교(3,768)77.8%, 중학생(5,688)51.5%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군 복무 중인 20대 청년에게 초등, 중학생보다 훨씬 낮은 단가로 식사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부실급식의 가장 큰 요인임에도 군급식 체계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민간 경쟁 체제 도입을 내걸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서두에 말했듯이 지금의 관청 즉 정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 판로를 개척해주고 농가소득이 오르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 생산량 저하로 가격이 상승할 때를 대비하고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 하락에도 대비하는 제도 고민은 물론 군 급식은 단순히 군인들의 식사를 떠나, 반복되는 자연재해와 수입 농산물 증가로 어려움에 처한 농가를 측면 지원하는 사회적 기여효과도 분명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비는 농사일이나 노동과는 거리가 멀어야만 대접받던 시대에, 유배살던 죄인으로 농촌에서 농민과 생활하며 농사일을 했던 다산의 모습을 떠올리며

농업현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라며 상승한 인건비와 자재비 등 농산물 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반영되고, 그간 농협이 50년 넘게 양질의 국산 농산물 제공함으로써 군인들의 건강에 크게 기여한 사실을 잊지 말길 바라며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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