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부재의 나쁜 영향(1)-루소

어머니의 부재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루소(1712~ 1778, 프랑스의 철학자, 교육론자)는 가난한 시계공인 아버지와 목사의 딸이자 재능이 많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루소가 태어난 지 열흘 만에 그의 어머니는 출산 후유증으로 죽고 말았다. 루소의 일생 가운데 첫 번째 불행이었다.

루소는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어머니가 목숨을 잃었다는 데 대해 한없는 자책감을 느꼈다. 물론 아버지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일자리 때문에 집안을 돌보지 않았고,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로는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며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루소가 열 살이 되던 해 프랑스 군인과의 다툼 때문에 (스위스의) 제네바를 떠났고, 결국 루소는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다른 도시로 도망간 아버지는 53세의 나이로 재혼을 한다. 14살의 루소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고, 이후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않는다.

가톨릭 신부의 소개로 루소는 드 바랑 부인을 만나 집사로 일하게 되었다. 16세의 소년과 29세의 남작 부인으로 만난 두 사람은 5년 후에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나 불륜 관계가 시작된 지 5년 만에 부인은 다른 남자를 사귀면서 루소를 쫓아내고 말았다. 루소는 한동안 부인을 그리워하다가 포기하고, 파리로 나왔다. 그리고 베네치아(=베니스. 운하의 도시로 유명)의 매춘부와 난잡스런 관계를 맺는다. 이때 그는 매독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끊임없이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그의 일생 중 가장 즐거운 체험은 소년시절 여자 가정교사에게 매 맞은 일이었다고 한다.(피학성 변태성욕) 그는 또한 평생 그를 따라다녔던 자위행위의 버릇과 음부노출증(음부, 즉 성기를 드러냄으로써 쾌락을 얻는 변태성욕)에 대해서도 아주 솔직하게, 그리고 약간은 자랑스럽게까지 기록하고 있다.

그 후 파리의 하숙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한 순박한 처녀를 만나 23년 동안의 동거 끝에 마침내 결혼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차례로 태어났는데, 루소는 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버린다. 왜냐하면, 자식들이 너무 소란스러운 데다 양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 파리에서 공립 고아원에 아이를 맡기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유명인사에 속했던 루소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66년 동안에 걸친 루소의 삶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열광적인 활동에 몰두하는가 하면,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우며 세월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당시의 가출한 젊은이가 가질 수 있었던 거의 모든 직업을 다 경험하였다. 그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동안 온갖 패륜행위를 저질렀다고 고백하고 있다. 루소는 사망하기 10년 전, 20년 동안 동거하던 세탁부 출신 하녀 테레즈 라바쇠르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파리에 자리를 잡는다. 애초에는 결혼할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녀의 헌신적인 도움에 감동을 받았는지 정식 아내로 받아들인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저지른 온갖 비행(非行)과 난잡한 성생활, 남작부인 및 세탁부 출신 여자와의 오랜 동거생활,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버린 행동 등은 어머니를 일찍 잃어버린 사태가 몰아온 이상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역사와 문화의 모든 성과를 비난하고 자연으로 되돌아갈 것을 요구한 그의 철학까지 이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저서거꾸로 읽는 철학이야기중에서)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