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

볼링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도 볼링 핀은 열 개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원뿔형으로 배열된 10개의 볼링 핀 중에서 맨 앞에 보이는 1번 핀을 정면으로 맞추면 대부분의 경우 스트라이크(10개의 핀을 모두 넘어뜨리는 것)는 실패한다고 한다.

원인은 맨 뒷 줄의 양 끝에 위치한 7, 10번이 핀이 쓰러지지 않고 남아 있거나 쓰러뜨리기 힘든 핀들이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스트라이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5번핀을 노려야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문제는 1번이나 3번과 달리 5번핀은 다른 핀들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뒤에 숨어 있는 5번 핀을 볼링에서는 킹 핀이라고 하고 이 킹 핀을 드러나지 않은 핵심이라고도 한다. 마치 밖으로 나타난 현상은 잘 보이는데 그 속에 숨은 근본 원인이라는 뿌리는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도 볼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서두에 볼링이야기를 한 것은 우리농업과 농촌은 보이지 않지만 국가의 근본이고 기본이기에 마치 볼링에 5번 핀과 같음을 말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우리 농업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확산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만성적인 일손부족 등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알셉)비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가입 검토 등 시장개방 확대라는 거친 파고가 예고 되어 있다.

최근 정부는 아세안 10개국 회원국과 한··, 호주, 뉴질랜드 15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알셉(RCEP)2021년 말까지 비준을 완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초대형 자유무역협정인 CPTT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한 가입 검토를 넘어 준비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쌀, 고추, 양파 등 국내 핵심 민감 품목은 현행 관세를 유지한 점을 들어 알셉(RCEP) 발효가 국내 농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절대 그렇지 않지만 지면 관계상 피해가 크다는 설명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FTA를 체결해서 정부 각료들이 잘 먹고 잘살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국가에 득이 되니 하자는 이야기인 줄은 잘 안다. 그렇다면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될지? 반 아사 상태인 농촌문제를 어떻게 풀지? 농관련 단체들과 충분한 교감을 갖고 검토하고 대책을 세워 달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정부를 좋아하고 대통령도 존경한다. 그렇지만 농업과 농촌문제를 풀어가는 데는 여타 정부와 아무것도 차별화 되는 것이 없어 정말 안타깝고 아쉽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FTA 체결로 이익이 되는 점이 있을 때 손실을 보는 대상에 대해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할 뿐이다.

일본도 농촌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위해 고향사랑기부제를 법제화해서 상당히 활성화 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법사위 문턱도 못 넘기고 몇 년째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농업인은 참아야 하고 왜 이토록 농업인 한테만 희생을 강요하는가? 농업분야의 희생을 전제로 한 정부의 대외경제 정책을 두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정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우리는 이미 세계 117개국 이 참여하여 7년의 진통 끝에 1994년 타결된 UR(우루과이라운드)협상. 그 후 세계무역을 총괄하는 WTO가 출범하였고 한·칠레 등 수많은 FTA를 체결하면서 발생한 문제들을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그 결과, 수입산 농산물이 전방위로 수입되면서 농업에 직격탄을 주었고,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암담한 현실에 처해있다.

게다가 정부가 농업을 홀대하는 것은 어제, 이틀일이 아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2년도 예산 요구현황 자료를 보면 각 부처는 2021년도 예산대비 6.3%가 증가한 5932,000억원을 요구한 반면 농림,수산,식품분야 예산은 2021년도 대비 2000억원이 증가한 229000억원에 그쳐 국가 전체 예산증가율 6.3%에 비해 0.9%의 턱없이 낮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분야별 요구현황]

구분

2021년예산

2022년 요구

증감

총지출

총지출

593.2

6.3%

보건,복지,고용

199.7

219.0

9.6%

국방

52.8

55.7

5.0%

교육

71.2

77.8

9.2%

농림,수산,식품

22.7

22.9

0.9%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개방 소식에 농민들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제대로 된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알셉 비준이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사지로 내모는 상황이 될 것이다.

농업과 농촌은 단순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식량안보를 보장하고, 국토의 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농업, 농촌은 도농간 소득격차증가, 농촌인구감소와 고령화, 농산물 수입확대 등 수많은 어려움이 직면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농업농촌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정부는 알셉 비준안 처리에 앞서 꼼꼼한 점검과 농업 피해 최소화에 힘을 쏟아 주기 바란다.

국가의 근본이자 기본인 우리농업과 농촌은 잘 보이지 않는 볼링의 5번핀(킹핀)임을 명심하고 1번 핀만 넘어뜨리려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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