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

세월은 흘러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누군가에게는 청명한 하늘과 형형색색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농업인들에게는 수확의 계절이자 결실의 계절이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쌀 한 톨 이라도 더 거두기 위해 밤낮없이 수고해 주신 농업인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황금빛으로 변한 들녘에는 벼 수확이 한창이다. 하지만 우리농업인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다. 최근 전남도는 2021년산 쌀 공급과잉 예상 물량 시장격리 등 특별대책 건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쌀값 안정을 위한 선제적인 시장격리 등 특단의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즉 올해는 지난해보다 벼 재배면적이 늘어 난데다 수확기 병해충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가 비교적 적어 쌀 생산량이 전년대비 늘어날 전망이다. 결국 올해도 쌀값 하락이 우려 된다

잘 아시다시피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5.8% 이다. 게다가 곡물자급률은 21%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수치상으로 본다면 쌀 생산량이 부족한 상태여서 적정가격을 받는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농업인들은 쌀 생산량에 불구하고 적정가격을 받지 못하고 있고 매년 쌀 값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후 쌀 관세화가 유예되는 대신 의무수입물량(TRQ)이 점차 늘어나 현재 408,700톤이 수입되고 있는 상황이고 수입쌀이 국내 생산량의 부족분을 메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쌀 재배면적을 줄이기 위해 시행한 정부의 타작물재배 정책도 현재는 유명무실하고,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35kg을 정점으로, 이제 60kg 미만으로 소비형태가 바뀌고 있다. 이처럼 쌀 경작 면적 감소에 못 미치는 소비량이 그 원인으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빠져있다.

우리 농민들은 언제까지 매년 쌀 가격으로 힘들어 해야 하는가? 매년 우리 농가들은 영광군 관내 벼 수매를 주관하는 농협 조합공동사업법인(RPC)에서 선제적으로 쌀 가격을 지지하고 농업인들을 위해 더 높은 가격에 매입 해 주기를 원한다. 필자 또한 농업인의 한 사람으로써 공감하나 그렇지 못하는 이면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매년 통합 RPC에서는 타 지역 시세를 참고하고 적지만 비교적 더 높은 가격에 매입하고 있으나 핵심은 꾸준함이다. 올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경영에 문제가 되더라도 한번만 농업인들을 위해 가격지지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떤 방법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이후에는 여력도 없고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즉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쌀 문제는 정부에서도 이렇다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매년 발생되는 문제점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정부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농협 자체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최근 일례로 2019년도에는 전국 RPC 142개소 중 53%75개소가 적자를 발생 하였고 사무소당 평균손익은 117백만원을 기록하였다. 즉 높은 가격에 매입을 하고 판로가 없으면 수십억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그것은 결국 고스란히 농업인 조합원의 손실로 귀결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높은 가격으로 수십 년간 명성을 이어온 경기미처럼 인정된 브랜드가 아닌 이상 전국의 많은 RPC와 경쟁에서 살아남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지역 쌀이 미질이 좋은데 왜 경기미와 경쟁에서 뒤쳐 지는가?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정부는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여 70년부터 통일벼를 대대적으로 생산장려 하였고 상대적으로 따뜻한 여건을 갖춘 전라도가 주산지가 되어 쌀 부족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부족을 해결한 정부입장에서는 미질이 떨어지는 통일벼를 권장할 필요성이 살아졌고, 다 수확으로 소득을 올렸던 전라도 농가들은 계속해서 다수확 위주의 품종선택과 재배로 전라도 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는데 일조를 했던 점은 간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에서 살아남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게 일정부분 가격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젠 공급자보다 수요자의 입장에서 농업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또한 수입 농축산물에 대한 거부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농민신문사의 2018년도 수입쌀을 먹을 의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637%, 201737.5%, 201843.3%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지금 현재는 불 보듯 뻔하다. 즉 국민 10명 중 4명 이상이 수입쌀을 먹을 의향이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쌀을 중심으로 식생활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성장하는 아동이나 청년들은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게다가 농가들의 어려움은 외면한 체 소비자 물가 운운하며 언론에서 여전히 쌀값이 높다라고 부추기며 소비자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고 정부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을 주시하며 국민생활과 가장 밀접한 쌀값 상승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 우리 쌀의 설자리는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결론은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농가들은 생산비도 못 건지는 암담한 현실에서 한 푼 이라도 더 받아야 하는 입장이고, 수매 후 RPC에서는 하나라도 더 팔기위해 품질에서부터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가격설정, 전쟁을 방불케 하는 타 RPC와의 치열한 경쟁, 수입산과의 경쟁에 살아 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품질이 중요하고 농가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한 사항이다.

농업인 입장에서는 각종 농산물 생산비는 증가하는데 농산물 값은 제자리 걸음 내지는 폭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생산량이라도 늘려야 하고 한 푼이라도 더 받길 원하는 절박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너무나도 안타까운 상황이다.

통합 RPC는 농협과 마찬가지로 운동체인 동시에 경영체로써 최소 필요 수익이 확보 되어야 지속적인 농업인 지원은 물론 갈수록 급변하는 소비 트랜드에 대비하고 투자를 통해 농업인들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가들이 원하는 가격과 수매가격은 일정 부분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 농업, 농촌은 지금도 힘들고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정부에서는 쌀 농가는 안정적인 식량공급을 통한 국가경제와 식량안보를 지탱하는 큰 버팀목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며 매년 되풀이 되는 쌀값 문제에 대해 농가입장에서 진정성 있는 근본 대책을 세워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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