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공동체 살림꾼

사람마다 독서습관은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보통 한 권의 책을 세 번쯤 읽는다.

첫번째, 정독하거나 통독하거나. 책의 종류와 읽는 목적에 따라 정독을 하는 경우도 있고 통독을 하기도 한다. 보통은 책 선택에 실패할 경우 통독을 하지만, 대부분은 정독을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인문사회과학 서적이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 같은 경우는 행간의 의미를 읽으려는 독자로서의 충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책장을 덮자마자 휘발되어 버리는 독서가 아니라 남는 독서가 되려면 읽는 행위 그 자체에도 정성을 들여야 한다.

두번째, 밑줄 그은 부분 위주로 다시 읽으면서 필사하기. 책을 다 읽고 나면 밑줄 그은 부분을 위주로 다시 훑어보면서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밑줄 긋는 습관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몸에 익은 방식이라 바꾸지 못하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이론서들 같은 경우는 책의 주제와 주요 개념을 정리하고 핵심 내용의 체계를 잡는데 역점을 둔다. 소설도 밑줄 그은 부분을 위주로 전체적인 줄거리를 한번 더 요약해본다. 물론 잔뜩 기대를 하고 책을 구입했는데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는 좋은 문장을 얻는데 집중한다. 아무리 기대에 못 미치는 책이라도 좋은 문장 몇 개쯤은 반드시 남는 법이다.

세번째, 쓰기. 이 단계가 제일 중요하고 가장 공을 많이 들인다. 되도록이면 완결적인 구조를 가진 글로 서평을 쓰려고 노력한다. 여의치 않으면 밑줄 그은 부분만이라도 필사를 해놓거나 간단한 메모 수준이라도 읽은 책에 대한 생각을 적어둔다. 독서는 글쓰기의 원천이고 사색은 글쓰기의 기본이다. 서평이라는 글쓰기를 즐겨 하는 나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 책에 대한 생각에 할애한다. 책의 내용을 곱씹어 생각하기를 반복하다보면 글의 얼개가 짜여진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글쓰는 노동에 몰입할 수 있다. 어떤 책은 읽자마자 글이 써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서평은 무려 한 달 가까이 씨름하듯이 쓰기도 한다. 빨리 써지는 글은 그만큼 생각이 빠르게 정리되었다는 뜻이고, 늦게 써지는 글은 그만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둘 다 의미가 있다. 나에게 쓴다는 것은 스스로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서평 쓰기를 하면서 혼자서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자신을 내몰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다.

'쓰기'는 책이라는 '활자의 감옥'에 갇히지 않고 사유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듯이 생각에 몰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을 하다보면 읽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고 신영복 선생은 "독서란 자신을 열고 자기가 갇혀있는 문맥을 깨고 자신을 뛰어넘는 비약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선생은 '삼독'(三讀)을 강조했다. 첫째는 텍스트를 읽고, 다음은 집필한 필자를 읽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텍스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 뿐만 아니라 필자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발 딛고 있는지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럴 때만이 그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을 수 있다고 독서의 본질에 대해 설파했다. 위대한 작가 못지 않게 위대한 독자의 탄생도 극적이다. 책은 독자에 의해 읽혀짐으로써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시키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출산 이후 찾아온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책을 읽었다. 육아 이외에 몰입할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독서로 달랬다. 여러 책을 읽고 틈틈이 글을 쓰면서 생각의 전환을 가져왔고 내면의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생각이 바뀌니 당연히 삶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읽는 것'이다. 책을 읽는 목적은 지식을 습득하거나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독서는 나 자신과의 대화이며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아무리 4차산업혁명시대라 하더라도, 유튜브와 동영상이 대세인 세상이 되었다 하더라도, 책 읽기를 포기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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